2024년 11월 21일
계약만료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데 괜스레 부끄럽다. 그동안 직업을 자주 바꾸고 직전에 백수 시기가 길었던 탓이다. 나름 성실하다고 생각했는데 계약직을 전전하거나 방향도 여러 번 틀어서 면접 때에는 이번 일은 오래 할 수 있겠냐는 질문도 받았다. 할 수 있겠다고 호기롭게 대답한 때로부터 1년이 지나 지금 백수 시절이다. 취업준비를 하지 않으니 백수라는 표현이 맞다.
피곤한 날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운동을 하고 나면 금방 오후다. 달리기 효과는 굉장했다. 실제로는 별 일 안 하는 사람임에도 무언가 하나 했다는 마음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하루에 한두 개쯤 집안일을 하고는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동화책을 쓰고 싶었는데 두 달째, 끼적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부모님은 어째서인지 빨리 일을 구하라고 닦달하지 않으신다. 늦잠을 자서 비몽사몽 침대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엄마는 피곤하면 더 자라고 권유하신다. 이는 반어법이 아니고 본인이 불면증을 겪으셔서 진심으로 더 자라고 하시는 말이다.
오늘은 나갈까 싶었는데 빗소리가 들려서 책상에 있던 커다란 화분을 한쪽으로 옮기고 성경을 읽었다. 읽다가 유튜브 숏츠를 보다가 읽다가를 반복하니 저녁을 먹고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하다 보면 금방 저녁이다.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데 효능감을 느끼는 하루는 무엇일까? 고민하는 내게 한 친구는 그저 존재하는 날도 있다고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