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 건네는 목도리를 칭칭 감고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로 사후 퓰리처상을 받은 천재 시인 실비아를 모티프로 한 극이다. 줄거리도 숙지하지 않은 채 그저 평이 좋아서 예매했다. 오랜만에 뮤지컬을 보는구나- 싶어서 설레는데 당일에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몸을 베베 꼬면서 보다가 몰입감이 엄청나서 끝나고 나서는 계속 혼자 훌쩍여 편의점 앞 벤치에 한참을 앉았다.
줄거리 소개_ 10년에 한 번씩 자살을 시도하는 천재 시인 실비아 플라스. 그녀는 시인으로서 인정받는 삶을 살고자 했으나, 누군가의 아내, 딸, 엄마의 역할을 요구받으며 마치 ‘벨 자’(작은 유리종) 안에 갇혀있다고 느낀다.
- 실존인물인 실비아 플라스의 이야기를 그리며- 팩션으로 재창작되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여성으로서 가지는 격정을 솔직한 글쓰기로 풀어냈으며 실제 그녀는 3번째 자살(31살)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1. 동화 결말처럼 행복하고 막연하게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처음 본 뮤지컬 <밑바닥에서>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내야 하는 인생은 당장 해피엔딩일 수가 없다. 인생그래프를 그릴 때 다들 제각각 곡선으로 과거를 표현하지만 미래는 모두 비슷하게 그린다. 상승 곡선을 그린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희망차기를 모두가 바라기 때문이다.
극에서는 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마치 유미의 세포들에서 미래에서 보내는 시그널이 현재의 ‘촉’이 되는 일과 비슷하다. 극에서는 과거의 실비아가 현재의 실비아에게 친구가 되어 찾아온다.
2. 개밥바라기별에서 황석영 선생님은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말하셨다. (개밥바라기별, 작가의 말, 285p, 문학동네) 실비아 플라스는 천재였고,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도 있었다. 문제는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은 더 끈적하고 무거웠다는 것이다. 시인의 아내, 워킹맘의 장녀, 두 아이의 엄마로서 실비아는 최선을 다했다. 버겁도록.
하고픈 일이 그녀에게는 글쓰기였다. 그녀는 글을 썼다. 빨간 목도리를 뜨듯, 멈추기도 하고 어쩔 때는 미친 듯이 썼다. 작은 소녀를 따듯하게 해 주기 위해서.
3.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5. 자유로운 날 위해 다.
루이스 보셔 엄마의 선의가 딸에게는 기쁨보다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엄마의 희생에 보은해야 한다는 부담일 수도 있고.
(중략….)
빅토리아 엄마를 증오해도 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때로는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부담이라고 느끼는 나를 죄악시하게 되기 때문에. 특히 가족은 더 그렇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완벽한 사람이다. 아빠가 일을 하지 않을 때도 식당에 나가 온 가족을-오빠와 나를 먹여 살렸다. 아빠와 함께 당구장을 운영할 때도 하루 10시간씩 일을 하면서 시어머니를 위해 육개장, 곰탕까지 끓이고 집안일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사회에서 일을 한다면 누군가를 만나 결혼까지 한다면 엄마처럼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가 이 지옥 같은 집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 며칠 전 엄마와 대화를 나눴는데 엄마도 그 시기가 무척 힘들었고 오빠는 몰라도 나는 차마 두고 갈 수가 없었다고 말을 했다. )
지금은 부모님 사이도 나름 원만하고 내일 먹을 밥 걱정을 안 해도 되는데 아직까지 내 어딘가에 남아 있었는지 눈물이 아주 주룩주룩…
4. 러닝타임이 끝나고도 한참을 훌쩍였다. 공시에 실패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를 생각했다. 남들이 칭찬해주지 않아도 계속하고 싶은 일이나 행위.. 나에게는 읽고 쓰는 일이다. 이 뮤지컬을 보고 누군가 내 삶을 응원해준다고 느꼈다. 내게 글쓰기 재능이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쓰고 싶은 “마음” 만큼은 확실하다. 장족의 발전을 거쳐 언젠가 누군가에게 몰입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면, 단 1분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이 모든 고민이 흩날리지만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