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심리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시즌이 끝나고 "무언갈 계속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남는 시간동안 책을 미친듯이 읽었다. 정말로 쌓아두고...
그러다 한 달 전 쯤부터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책이고 뭐고 멍때리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다. 멍 때리면서 평화롭기도 했지만 무언가 마음 한 켠이 참.. 불명료하다, 탁하다, 답답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분기 뛰고, 간간히 3월말 기말을 뛰러 필드를 가면 진짜로.. 타이어를 매달고 달리는 것처럼 너무 숨이 찼고 하기가 싫었다.
그렇게 한참을 허덕이다가 정말 푹, 쉬어야겠다 싶어서 지난 주에 제주도를 다녀왔다. 제주도에서 혼자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니 나는 너무나도 불안했다. 카페를 갈지, 바다를 갈지 결정을 못했고 카페를 가서도 커피를 마실지 에이드를 마실지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머릿 속에는 이걸 하면 이래, 저래, 계속 끊임없는 짐작과 생각들.... 그리고 하루 중에도 간헐적으로 눈물이 터져나왔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 뭐하지"라는 생각만 해도 내일이 오는게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에 또 울었다.
그 때서야,
막막하게 깊은 안개 속을 걷는 지금 상태가 지금의 혼자 패턴으로 해결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서울에 오자마자 심리상담센터를 50군데 넘게 찾아본 것 같다. 각종 웹서핑을 통해 어디가 나랑 맞을지를 심사숙고 하고 한 군데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하고 직접 가기 전까지도 "정말 필요한걸까? 그냥 지나가지 않을까? 오바하는건가?" 엄청 많은 의심과 저항이 들었다.
그렇게 상담실에 들어가서는 약 20분을 지금 상태에 대해 느끼는 대로 말했고, 상담사는 듣자마자 "번아웃 같은데.."라고 하셨다. 후.....듣는 순간 정말 납득이 안됐다. 나는 고작 이직한지 1년도 안돼서, 그냥 시즌 1번 뛰었을 뿐인데 '번아웃? 그러면 앞으로 매 시즌마다 번아웃을 겪는다는건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원인으로 제시한 건, 어렸을 때 부모님과는 어땠냐며, 어렸을 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감정억제가 심해지고 그게 체화되면, 성인이 되서는 "관계가 흔들릴 때의 불안감"과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강박"이 보인다고 언급하셨다.
처음의 저항감을 지나 찬찬히 생각하니 아주 솔직히, 진실되게 생각하면 그런 면이 없지 않으니까. 하고 벗겨내다보니 정말 큰 인정욕구가 아직도 나한테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겪은 정말 큰 번아웃과 우울감을 통해 인정욕구보다 내가 하고싶은 것을 찾아서 하는 인생을 살자고 정말 굳게 다짐했었는데..
그런 다짐이 머리를 굳게 지배하면서도, 마음 속엔 아직 인정욕구가 크게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받아들이고나니, "고작 시즌 1번"이었지만 그 시즌 간 내가 마음 고생하고 긴장하며 팀원들의 눈치를 보며 인정받고자 정신적으로 긴장했던 정도가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래서 번아웃이 올 수도 있겠구나..'
공부할 때는 쏟아붓는 체력과 물리적인 요소만을 바라봤다면 사회생활 속에서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상담사는 직업을 당장 그만두거나 바꾸는 방향보다는 "회계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좀 더 유하게 할 수 있을지"를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상담을 제안하셨고, 자기는 원인을 빨리 파악하는 스타일이라 상담 후에 더 좋아질 거라는 확신을 주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후 드는 생각은... 전문가가 "번아웃 증상"이라고 말해도 나는 그걸 인정하지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제가요? 전 별로 한게 없는데요? 이정도만 하고 번아웃이 온다는건 너무 나약한 일이에요"라고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성향을 구체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상담사는 내 감정억제의 수준이 조금은, 심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우울감도 꽤 길고 깊어보인다고. 나도 그 부분에 동의를 한게, 그 인정욕구 때문에 1번의 시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서 허덕이면서도, 내가 나약하다는 생각에 지배되어 그 신호를 무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심리상담을 장기적으로 받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