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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Oct 22. 2022

나가는 길은 안에 있어요

에필로그


발리 2개월, 호주 3주, 발리 2개월을 돌고 돌아 서울에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내 인생 가장 긴 해외여행이었다. 스물아홉 후반기에 서른을 자주 생각했듯 발리 여행 막바지엔 서울에 돌아가면 어떨지 자주 상상했다.


간판에 보이는 한글이 어색하려나?

발리에 비해 도로가 깨끗하게 보일까?

아니면 차가 너무 빠르다고 느낄까?


예상 밖으로 서울에 오자마자 모든게 너무 편안하고 익숙했다. 인천공항도, 한글도, 깨끗한 도로도, 빨리 달리는 차도 모두 익숙했다. 갑자기 변한 외부환경에 예민한 성격이라 언제나 몸과 마음이 함께 긴장상태로 변화를 맞이했는데, 이번엔 몸이 먼저 어떠한 긴장 없이 빠르게 녹아들었고 그 속도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했다. 너무 새로웠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게 있었다면, 사람. 마스크를 쓴 탓도 있었겠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아무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고 눈웃음을 짓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쳐다보며, 이렇게 오랜만에 한국인 틈에 있음에도 어떠한 연결감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낯설었다. 동시에 발리에서 얼마나 사람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었는지도 떠올렸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도착했다. 엄마는 내가 먹고싶다고 했던 미역국을 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적당히 짐을 풀고, 엄마가 차려준 밥상에 앉아 밥을 한 숟갈 입에 넣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의 음식조차 모든게 다 똑같은데
뭐가 이렇게 새롭고 낯선거지?



그 날 저녁, 우붓에서 같이 요가수련을 했던 대만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친구: 한국가니 어때?
나: 내 마음이랑 정신 빼고 모든게 다 똑같아. 모든 환경이 다 익숙한데 왜 이렇게 소스라치게 새로운걸까?
친구: 그럴 수 있지, 모든 장기여행자들이 다 그렇게 느낄껄.
나: 더 예민해진거같아. 모든게 너무 새로워. 정리되지 않는 새로운 감정에 압도돼서 엄마밥 먹다가 그냥 울어버렸어.
친구: 하하, 그건 너의 마음이 더 강해졌다는거야!
나: 무슨 뜻이야?
친구: 여행동안 많은 경험을 하면서도 여전히 열린마음을 가졌기에 익숙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측면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거 아닐까? 그게 강한 마음이고.


며칠 후엔, 우붓 한달살기를 마치고 9월초에 먼저 발리를 떠났던 스페인친구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친구:  발리에서 경험한 것들,   안에 그대로 있으니까 걱정마! 그리고 앞으로 요가수련은 어떻게 하게?
: 모르겠어, 우선은 집에서 하려는데 자꾸 게을러지려 하네.
친구: 집에서 수련할 기운이 부족한가보네. 방에서 뿌자(신을 향해 거행하는 힌두교의 숭배적 종교 의례)   .
: 짜증나 진짜ㅋㅋ 인스타그램에 수련하는 영상을 매일 올려볼까? 그럼 동기부여가 되려나.
친구: 그건 너무 외부적인 요소잖아. 내적동기를 찾아봐. 미래에 스스로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상상해보면 요가수련에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을까.



한국에 도착한지 일주일만에 다시 요가매트에 섰다. 서울에 오면 새로운 요가원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다는 글을 쓴 적이 있지만, 나는 또 미련 맞게 혼자 수련을 고집하고 있다. 발리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전히 커뮤니티의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페인친구 말대로 뿌자는 못해도 오랜만에 깨끗하게 방청소를 하고 발리에 들고가지 않았던 5년동안 함께 해 온 나의 매트를 꺼내니 산뜻하고 포근했다.


요가를 하는 내내 너무나도 많은 생각이 올라왔다. 그렇지만, 우붓에서의 아쉬탕가 선생님의 조언대로 생각에 휩쓸려 호흡과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걸 최선의 목표로 잡았다. 우붓에서 깨달은대로 내 방에서의 수련도 경험이 습관이 되도록 해보자는 다짐과 함께. 대만친구가 수련할 때 너무 생각 많이 하지 말라고 했던 말도 생각나고, 어려우면 점을 하나 찍어두고 그것만 보라는 조언도 떠올렸다. 항상 선생님이 잡아주던 자세에서는 선생님의 발걸음과 손교정이 느껴지는듯 생생했다.


발리를 다녀오기 전과 똑같은 방, 똑같은 매트지만 수련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한 명의 요가선생님만 존재하던 지난날에 비해 내 안에 발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존재하고 있음이 달랐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Lokah Samastah Sukhino Bhavantu,
May All Beings Everywhere Be Happy and Free,
모든 존재가 모든 곳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Mangala Mantra, 아쉬탕가요가 클로징만트라]


여느때 처럼 수련을 마치고 가슴 앞에 합장하고 만트라를 외우고 나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었다.


합장한 상태로 고개를 숙여 내 심장에 인사하며 오늘 아침 매트 위에 선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오늘의 수행자인 나에게 한 번,

그 손을 미간으로 가져와 나에게 사랑을 알려준 모든 사람들을 향해 두 번,

자유와 행복을 기도하며 감사와 축복의 마음을 담아 사랑을 보낸다.


이미지 출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나의 요가수련이, 나의 직업이, 나의 사랑이, 나의 행복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길을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주어진 길은 없으니까.

이제는 불확실성을 향해 힘을 빼고 흘러가듯 살고싶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기 위하여 오늘도 삶을, 사람을, 사랑해야지!


The only wayOUT is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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