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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Oct 19. 2022

사랑의 확장

삶, 사람, 사랑


발리 생활 3주 차, 서핑을 배우러 갔다가 한국인 친구를 사귀었다. 그 친구는 영국, 호주 워킹홀리데이와 인도 여행까지 다녀온 프로 여행러! 장기여행이 처음인 나로서는 그의 모습이 참 여유롭고 멋있어 보였다. 요가를 하러 발리에 왔다고 하니 친구가 요가랑 서핑은 극과 극에 있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요가매트에서도 서핑보드에서도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내가 욕심을 내는 건지 또는 할 수 있는데 포기하는지 중간을 찾으려고 애쓰는 게 똑같다고 생각했기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서핑은 계속 나에게 오기만 하는 파도를 맞이하고 요가는 나한테서 계속 무언갈 비우잖아.”


그 순간, 그가 정말 섬세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발리에서의 생활에 점점 적응하고 익숙해져 가던 시기여서일까? 그와 함께 있을 때면 그간 새로운 환경에 긴장하던 내 마음은 나보다 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스미냑에 지내던 짧은 시간 동안 그를 만날수록 좋았지만, 타지에서의 설레는 감정은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여행 일정에 따라 나는 스미냑을 떠나 다시 우붓으로 돌아왔고, 본격적인 요가 수련을 시작했다. 자주 그가 생각났지만, 마음 한 켠엔 ‘상황이 불확실하니까, 내지는 스스로 부족하다’는 탓을 하며 마음을 내보이거나 확실한 감정표현을 절제하려 했다. 나는 아마도 무집착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약 10일 후, 그 사람이 한국에 돌아가기 전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우붓의 띠르타앰플 사원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함께 사원을 구경했다. 띠르타앰플 사원은 “물의 사원”라는 의미인데, 나도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성수가 나오는 곳에 들어가 성수에 몸을 담그고 기도를 했다. 어떤 소원을 빌까 잠시 고민했지만, 내 마음에 존재하는 간절함은 단 한 가지였기에 성수가 나오는 약 10곳 지점에서 10번의 같은 소원을 빌었다.


사랑을 알려주세요. 사랑을 알려주세요..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면서도 표현을 주저하는 나를 보며, 나는 자기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사랑이 부족해서 타인에게 줄 사랑도 확신도 없는 거라고. 무언가 더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발리 생활 2달을 마치고, 마지막 날 대만 친구와 우붓 왕궁을 둘러본 후 호주자본이 투입되어 이곳은 발리인가 호주인가- 하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6살이 많은데 지금의 내 나이 때, 그러니까 6년 전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했다. 우울증과 폭식증과 슬럼프가 같이 왔다며.


나: 그래서 어떻게 극복했어? 나도 그런 과정을 겪어봤고, 지금도 그 과정 안에 있는 것 같아. 너무 궁금해.
친구: 클라이밍을 시작했고, 남자 친구를 만났지. 별로 노력한 거 없이 자연스럽게 극복이 됐어.


그녀는 5년의 연애 후 남자 친구와 작년에 결혼을 했다. 나는 그녀의 답변에 조금 허무했다. 나는 그간 사랑하면서 나를 잃어버렸고 앞으로는 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 사랑을 채워야 한다고 다짐했는데, 그녀는 사랑하면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어쩌면 사람과 사랑을 분리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2달간의 여행을 정리하면서 바라본 나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마음이 열릴 듯 열리지 않았고, 사랑을 알듯 모르겠고, 나의 가치관도 뒤집힐 듯 그대로였다. 성수가 나오는 사원에서 10번을 기도했지만,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2달 생활을 마무리하고 발리를 떠나게 되었다.



3주 간 호주 여행을 마치고 발리의 우붓으로 돌아왔을 때의 나는 지난 기도를 잊었다. 사랑은 고사하고 그저 요가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아니다. 난 그냥 대만 친구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친구처럼 요가를 열심히 하면 나도 자연스럽게 타인을 사랑하면서 자기 사랑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새로운 두 달을 걸었던 것이다.  그 친구가 없는 우붓에서 그 친구처럼 살아보려 했다.




역시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이다. 나는 그녀를 모방했지만 새로운 내가 태어났다. 음식, 금주, 수면, 매일 아침 요가 등의 생활습관을 따라 했어도 그녀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녀는 스쿠터를 몰았고 나는 걸어 다녔다. 그녀는 수련을 마치면 평일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하루 종일 돌아다니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부지런히 걸어 다니고, 오후 요가 수업도 참여하면서 수십 명의 사람들과 대화와 포옹을 나누었고, 수백 명의 사람들과 미소를 나누었다. 나는 분명 요가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었는데, 나날이 미소와 포옹 실력만 늘었다. 길거리나 식당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누가누가 해맑게 웃는지 경합하듯 웃어 보였고, 요가 수업을 마치고 누군가 포옹을 건넬 때면 친구의 들숨과 날숨을 빠르게 알아내는 게임을 하듯 포옹하는 동안 그 친구의 호흡 속도에 맞추어 3번을 같이 숨을 쉬었다.

누군가와 거울 보듯 마주 웃고 하나가 된 듯 같이 숨을 쉴 때면, 타인의 판단 평가와 같은 시선에서 자유로워졌고, 공유되는 긍정적인 감정 속에서 행복을 주고받았다. 이러한 연결감 덕분에 발리에 혼자 왔지만 단 하루도 외로웠던 적이 없었으며 그들의 문화에 잘 적응하는 내가 기특했고, 잘 품어주는 그들에게 고마웠다.



하루는 노래 수업을 마치고 함께 참여했던 친구들과 무리 지어 요가원을 나오던 길이었다. 함께 수업을 들었던 서양 남자애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친구: 이름이 뭐야?
나: 내 이름은 지혜야.
친구: 너 이름은 뜻이 뭐야?
나: wisdom, intelligent
친구: 좋다. 내 이름은 00인데, 내 이름은 뜻이 뭐게?
나: 뭔데?
친구: Power of god. 신의 힘이 뭐라고 생각해? 신이 가진 궁극적인 힘은 뭘까? 뭐게?


무언갈 유도하는 이 친구의 질문에 나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고 옆에 있던 발리 현지 친구가 대답했다.

LOVE?


정답! 서양 남자애와 발리 현지 친구는 하이파이브를 하고선 둘이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한 때 그토록 알고 싶던 사랑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 왔다. 누군가와의 관계에 대한 집착과 무집착의 사이에서 시작된 사랑 찾기가 지금은 크게 간절하지 않았다. 지금 나에게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여기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최대한 미소와 포옹을 나누며 유대감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요가수트라는 한국에서 발리로 올 때 챙겨 온 유일한 책이다. 구매한 지 4년이 되었지만 서울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이 책을 발리 여행 중 3번을 읽었다. 머리로 이해하며 읽었던 첫 번째 완독과 달리 여행을 마무리하며 3번째 책을 읽을 때에는 발리에서 요가 수련을 하던 경험이 책 내용과 겹쳐졌다. 그러다 아래 내용을 읽다가 내가 더 이상 사랑 찾기에 간절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냈다.



흔히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들만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더욱더 섬세한 인식을 개발시킨다면 더 미세한 대상들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기보다는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뿐입니다. 비록 냄새가 물질이며 매우 미세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러한 미세한 인식들을 충분히 발달시켰다면, 우리는 마치 자석의 힘처럼 내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각 개개인은 오로라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보통 그들의 영체 색깔인 오로라가 아닌 육신만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보기 위해서 섬세한 감각들을 개발시킬 수 있습니다.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여기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 누구도 무슨 일을 하는지, 돈은 얼마나 많은지, 옷은 어떤 걸 입는지 같은 물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꿈이 무엇인지, 어떨 때 행복한지, 언제 가장 슬펐는지, 우붓에 살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요가를 시작한 계기는 뭐였는지 등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그들은 미소와 포옹을 나눌 때, 나의 조건 지어진 외적인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았고 그저 존재 자체를 환영해주었다. “있는 그대로”, “존재 자체”라는 말이 요가수트라에서 말하는 거친 대상인 외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말투, 행동, 표정, 가치관을 내포하는 사람 자체의 섬세한 기운이라고 이해되었다.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 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태도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올바른 대상 만을 고르면서 대상만 찾아내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신들의  발리에서, 사랑을 신들의 힘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동안 “나의 사랑으로 너의 자기 사랑을 믿게  테니, 너는 조건 지어진 마음을 버리고 섬세한 감각만 개발시키면 .”라는 메시지를 꾸준히 받았다.

지금껏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채워야 한다 생각했는데, 열렬한 요가 수련을 통해 내면의 거친 인식을 비우고 나서야 사랑을 행할  있었다. 사랑은 대상을 찾고 환경을 마련하며 기다리는  아니라, 사랑을 활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4개월의 발리 생활을 정말 마무리할 때가 왔다. 마지막 주는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작별인사를 했다. “ 이번  금요일에 한국으로 떠나!”라고 말하는 에게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래, 다음에 보자!”라고 가볍게 인사를 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때면 무집착과 집착의 차원을 넘은 안정감 느껴졌다. 우리의 삶들은 여전히 불확실하지만 그렇기에 살다 보면  만나게  거라는 가능성과 함께. 

마지막으로 참여한 노래 수업 후 선생님한테 다가갔을 때는 “이제 떠나지?”라며 진한 포옹을 해주셨고,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동안 섬세해진 감각으로 ‘너의 안전과 행복을 언제나 응원한다’는 말을 마음을 통해 전해 들었다. 떠나기 전날, 떠나는 날 인사를 위해 들른 카페에서도, 떠나는 당일 아침에 들른 코코넛 가게에서도 하나 같이 현지인들은 조심히 돌아가라며 마지막 음료 값을 받지 않았고, 코코넛 가게 아저씨는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의지까지 보이셨다. 이미 택시를 예약한 상태니 괜찮다고 말하며 모두가 진심으로 내어준 마음에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인사를 마치고 공항 가는 택시를 탔을 때부터 서울에 오는 동안, 어떠한 의문과 아쉬움 없이 가득 행복하고 든든했다. 발리에서 받은 행복만큼 나도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미소와 포옹이 그들에게도 사랑이 되었다는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발리 생활의 결말은 내가 기대한 모습과는 멀었지만, 물의 사원에서 올린 나의 기도는 응답받았으며 바라던 바를 이루었다. 언제나 삶을 사랑으로 살아가고 싶었던 막연한 소망이 발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삶, 사람, 사랑은 모두 하나였다.


사랑, 너의 존재가 나의 자랑이 되는 것
사랑, 너를 알게 된 내 삶이 자랑스러운 것


사랑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 곧 다른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과 그 신뢰성에 대한 신앙이다.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의 또 한 가지 의미는 다른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과 관계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거의 갖지 못한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한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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