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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유 Ayu Nov 17. 2024

커다란 마음

"너는 요즘 힘든 일 없어? 말해봐."


'나는 항상 너희들에게 터놓고 힘든 얘기를 하는데 너는 왜 안 해? 그러니 말해봐.'라는 생각을 가지고 물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내 질문에 선뜻 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힘든 일이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없는 건가? 정말 나만 힘든가 봐...'라는 단순한 생각을 넘어, '내 안이 너무 나로 꽉 차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받아줄 여력이 없어 보였겠구나.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거구나.'라고 깨우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말해보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자연스레 힘들 때 터놓을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내가 겪는 크고 작은 힘든 일을 내 바운더리 안에서 보듬고 해결함으로써 그들과 관계있지 않은 일이라면 그들과의 대화에서 내색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면 더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느덧 11월 중순이 왔다. 1년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기이다.


나는 10월 말부터 11월이 너무 힘들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치고 다운되는 시기라 그게 바깥으로도 영향을 미쳐 주변 인간관계를 내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것이 또 스스로에게 상처와 후회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올해부터는 그 시기에 나만의 리추얼을 하기로 다짐했다.


정확히 무엇을 할지 정하진 않았지만 마침 10월 말에 불교수도원 플럼빌리지에서 1주일을 보내기로 해서 '올해는 플럼빌리지가 내 리추얼이다!'라고 생각했다.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첫 방문이었지만 플럼빌리지를 가는 길 내내 '1주일 동안 수련하고 떠나는 날 내 호흡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면...'이라는 막연한 마음가짐을 세웠다.




일주일 동안 Mindfulness(마인드풀니스: 불교 수행 전통에서 기원한 심리학적 구성 개념으로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하는 것)을 연습함을 통해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감쌀 수 있다는 걸 배웠고, Interbeing - 즉,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중 어느 하루, 아침명상동안 슬프고 불안한 생각 때문에 집중을 하지 못했고 눈물이 흘렀다. 명상을 마치고 요가를 하는 시간에 스님은 말씀하셨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지 말고 호흡에 집중하세요. 


지금은 요가하는 시간이니 현재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마인드풀니스수행과도 일치하는 그 당연한 말에서 순간 깨달았다.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생각과 행동이 멈춘 것을 본 에고가 다른 모습으로 명상하는 동안 나타난 거였고 난 거기에 먹이를 주고 있었구나.'라고.


그리고 온전히 호흡에 집중하며 요가를 마치고 나니 어느 때와 같이 행복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10월 말부터 급격히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면 가끔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생각과 언행으로 번져나와 매년 같은 패턴의 상처를 남겼던 지난 날들. 이제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며 트라우마를 찾아 탓하고 있었던 터라 마인드풀니스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행복으로 탈바꿈시켰던 그 순간은 기적을 맛본 듯했다.


플럼빌리지에서 떠나는 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커다란 마음'이라는 다섯 글자만이 떠올랐다. 내 부정적 감정을 감싸는 것뿐 아니라 interbeing의 개념처럼 우리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커다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다짐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2주가 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가슴 아픈 소식을 많이 들었다. 연달아 들려오는 크고 작은 소식들에 충격을 받아 무기력해지기도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때도 있었다.


타인의 사건과 사고 소식이 나의 일만큼이나 내 안에 호수에 일렁임을 준다고 느끼니 문득 '아..... 이 시기가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싶은 거다. 내 안이 아직까지도 나로만 꽉 차있어서 알아채지 못했던 거지, 사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는 우리 모두에게 취약한 시기라는 걸 이제야 가슴으로 깨닫는다.


이런 맥락에서 위에서 말한 내가 생각하는 여유의 정의를 바꾸어야겠다. 마음을 호수로 비유한다면 호수의 크기를 넓혀감으로써 타인의 호수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으로 말이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급변하는 기온과 환경에 몸도 마음도 취약해지기 쉬운 요즘의 날들, 스스로를 돌보며 모두가 평온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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