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에 압도되어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거나 막연히 모든 것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대략 7살쯤부터였다. 특히 친구네 집이나 수련회를 가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집이 아닌 곳에서 잠들 때, 깜깜한 방 안에서 친구들은 모두 자고 있을 때 그런 불안감이 올라왔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잘못한 것 같다는 죄책감, 내일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나를 혼내고 가족들이 날 비난할 거라는 생각, 그것은 나의 존재감과 입지를 좁히는 만성적 수치심이 발동하는 신호였다.
가족들에게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받은 건 10살 때가 처음이었다. 구청에서 주관하는 그림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고, 엄마랑 목욕탕을 갔는데 엄마의 손길과 관심이 조금 다르다고 느꼈었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해서 높은 성적을 받으면서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들의 관심이 긍정적 미러링으로 다가왔고, 높은 성적과 성과는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해주는 조건이 되었다.
완벽과 유능을 조건으로 한 거짓 자기는 참 자기를 느낄 새도 없이 내 안을 장악했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그들의 존재나 감정보다는 타인들의 시선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우선이었다. 남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고, 그 기대에 충족될 때에만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그렇게 거짓 자기로 꽁꽁 숨겨왔던 수치심이 처음 건드려진 것은 23살쯤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를 통해서였다. 연애 초반 2개월은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처럼 나에게 잘해줬다. 매일매일 편지를 적고 사진을 붙인 빼곡한 일기장을 선물로 줄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너무나 차가운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이기적이라 자기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자신이 냉정해진 이유를 내 탓으로 돌렸고, 다른 남자 학우들에게 손 흔들며 인사하지 말고 목례만 하라며 내 행동 하나하나에 간섭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가 차가워진 건 나 때문이고, 내가 그의 요구대로 행동을 교정한다면 그는 연애초반처럼 따뜻한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개월이 지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기대에 충족되기는커녕 항상 핀잔만 듣기 일쑤였던 나는 존재 자체를 잃은 것처럼 너덜너덜해졌다. 너무나 괴로워서 그를 떠나고 싶어 헤어지자고 하면서 동시에 그를 떠나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결국 연애기간 10개월도 되지 않아 그의 잠수이별로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와의 연애관계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가까운 타인의 기대에 충족될 때에만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 때문에 헤어진 이유도 모르고, 잠수이별도의 원인도 다 내 탓일 거라고 생각하며 자기혐오가 극심해졌다.
결국 이별 후 두세 달이 지나도 매일 밤 울고 있는 나에게 친언니는 심리상담을 권했고, 그게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그 당시 약 3개월의 심리상담 후, 요가를 하면 내면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어 요가도 꾸준히 시작했다.
여러 요가원을 경험하며 더 깊은 요가를 원해 2019년부터 새로운 요가원에 정착했는데, 그때 만난 선생님은 내 수치심에 가려진 참 자아에 햇살을 비추는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근심 어린 눈빛으로 “잘 지내요? 행복해요?”라고 물을 때면 인사말인 줄 알면서도 억눌렀던 부정적 감정들이 눈물로 와르르 쏟아지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이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기엔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했다. 내 안에 수십 년간 눌러 놓은 엄청 큰 덩어리들이 마구 튀어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한국말이 서툴고 영어가 모국어였던 선생님은 요가수업을 할 때, “좋아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잘했어요, 천천히, relax, breathe 지혜.”라는 말로 수업을 진행하셨다. 그리고 3년 후 선생님은 다른 여정을 위해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셨다.
나도 2022년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휴식을 위해 발리여행을 두 달간 떠났다.
발리 사람들은 항상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인사를 건넸는데, 그것들이 언제나 기대에 충족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졌던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경험이 좋았고 그 느낌만으로 충만했다.
자유롭게 2달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너무너무 돌아가기 싫었다. 그 당시 친구가 발리가 왜 그렇게 좋냐 물어봤는데 나는 “그냥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라고 말했고 친구는 “지혜… 그런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많잖아.?”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만성적 수치심이 없는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발리여행을 2달 더 연장했고, 연장하고 처음 요가원에 간 날 내 수치심에 빛을 비춰주는 사람을 만났다.
함께일 때도 요가선생님을 만날 때처럼 억누른 감정이 와르르 눈물로 자주 쏟아졌고, 그는 항상 찬찬히 내 얘기를 다 들어준 뒤 “It’s nothing” 괜찮다며 나를 안정시켜 주었다.
그의 다정한 눈빛은 수치심에 가려진 참 자기를 불러내는 강력한 초대장을 보냈고, 내가 수치심을 숨기느라 거짓 자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모든 경험을 끌어안게 해주었다.
스페인사람인 그와 한국인인 나. 우리는 4년 전 발리에서 만나 여전히 함께이다.
발리에서 각자의 나라로 떠날 때 그는 나에게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나는 네가 이성적으로 좋지만, 한국에 돌아가 남자친구가 생기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알려줘! 친구로서 온 마음을 다해 축하해주고 싶어.”
그는 자기가 가진 연약하고 사랑을 원하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당부와 비슷하게 언젠가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서로의 성장과 변화를 인정하고 축하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그는 수치심에 있어 내 롤모델이다.
자기의 모든 경험을 끌어안고 수치스럽고 두려운 감정까지 있는 그대로 전하고, 감정을 억제하는 나를 보며 남들의 시선에 중점을 두지 말고 내 감정을 좋게 만드는 것을 우선시하게끔 도와준다. 내 감정이 좋을 때 그런 상태에서 가슴이 원하는 것을 한다면 그게 노래든, 춤이든, 분노표출이든… 내가 우려하는 무시와 조롱 등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있다.
그리고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에도 “안 돼요, 그만하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선을 분명히 하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모습도 상당히 큰 도움이 된다.
아직은 내 참 자아는 그의 햇살에 의존하고 있어 가끔 내가 그에게 잘못하거나 실수했을 때에는 그가 나를 싫어할까 봐 불안하기도 하다.
나를 사랑하냐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질문에 “난 언제나 널 사랑해. 그저 실수한 이 상황에 대해 말하는 것뿐이야.”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이런 상황에 내가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는 존재는 나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나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2월에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나의 수치심에 대한 기억들을 엮어서 과거를 돌아보며 글을 써보았다.
내가 내 참 자아에 다정하고 근심 어린 눈빛을 줄 수 있기를,
내 어두운 수치심에 따뜻하고 용감한 빛을 비출 수 있기를,
남들의 기대가 아닌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를,
꽁꽁 숨기고만 싶었던 수치심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나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더 편안해지고 자연스레 그들에 공감한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에는 “좋아요,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잘했어요, 천천히, relax, breathe 지혜.”라는 요가선생님의 긍정적 응원을 내 가슴속에서 꺼내어 들려준다.
수치심이라는 씨앗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탈바꿈 할 수 있기를…
내 안의 꽃이 피어나는 긴 여정을 한 단계 한 단계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