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7 삼쇠섬 8일차(덴마크11일차)
내 곁의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언어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 속에 앉아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아침부터 빗줄기가 거셌다. 비가 오는 날엔 땅이 질어 밭에 나가지 않는다. 덕분에 오전에는 내가 식당에서, 저녁에는 쇠얀이 일하기로 했다. 보통 식당은 비성수기에는 오후 3시에, 여름철 성수기에는 5시까지 문을 여는데 오늘은 저녁에 식당에서 조촐한 파티가 있기 때문에 특별히 쇠얀이 서빙을 돕기로 했다.
오늘은 ‘Store Bededag(Great Prayer Day)’라고 하는 덴마크 공휴일이다. 덴마크는 ‘루터교’를 국교로 삼고 있기 때문에 종교와 관련된 공휴일이 많다. ‘위대한 기도의 날’ 정도로 번역되는 이 날은 스티니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옛 사람들이 주일에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일을 시키는 지주에 대항해 파업하고 교회로 몰려간 날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따라서 예전에는 일하지 않고 금식하며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의미로 생겨났지만 지금은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저 쉬는 날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덴마크는 루터교를 국교로 정한만큼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신이 자리 잡고 있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종교세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기독교인들조차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한국에서처럼 모두가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지는 않는다. 덴마크에서 기독교는 종교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일상과 밀접해 있다. 오랜 기간 종교적 변화를 통해 신은 특정한 날(주일) 특정한 장소(교회)에 나가야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어디서든 누구나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목사는 국민들이 내는 종교세에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고 선생님, 부모 같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교회는 결혼식, 장례식, 세례식 등을 주관하며 보다 더 깊이 삶 속에 자리잡고 있다.
더불어 덴마크의 국교는 동성결혼은 물론 다양한 신을 믿는 사람들을 인정하면서 발전해오고 있어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자기만의 신을 믿고 있다. 킴과 스티니 또한 독특한 신을 믿고 있는데 킴은 오딘과 토르 신을, 스티니는 독수리 아버지를 믿고 있다. 우리에겐 마블 영화 속 인물로 유명한 오딘과 토르는 북유럽 신화 속에 등장하는데 폭풍과 번개같이 날씨를 관장하는 강력한 신이다. 아무래도 농부로서 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날씨이기에 그렇겠지만 평소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의 그가 전쟁을 좋아하는 강한 신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특히 내게는 오딘과 토르 하면 영화 속 캐릭터로 먼저 떠오르는 탓에 실제로 그들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을 만나니 조금 얼떨떨했다. 물론 킴은 “낫 어벤져스.”하고 덧붙였지만.
덕분에 식당은 궂은 날씨에도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다. 저녁에는 동네 사람들을 모아 스티니가 조촐한 식사를 준비하는 파티가 열렸다. 이 행사가 어떤 의미로 시작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Store Bededag에는 스티니와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식당에 모여 함께 식사했다. 지금은 Store Bededag에 관련된 전통이 특별히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예전에는 마을에 종소리가 울리면 모두들 하던 일을 중단하고 기도 준비를 하거나 함께 산책하거나 따뜻한 빵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처럼 이 식사는 이 마을만의 전통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와 쇠얀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앉아 맥주와 식사를 함께 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내 곁의 사람들이 내가 모르는 언어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고 알아듣지 못하는 대화 속에 앉아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내 모습이 신기했다. 영어가 가능한 사람들은 내게 어디서 왔냐, 얼마나 머무느냐 정도의 질문을 했고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단순한 질문을 넘어서는 따스함을 담은 눈으로 우릴 향해 웃어주었다. 그 순간 느낀 따뜻함과 조금의 긴장감, 또 한 걸음 더 크게 익숙해진 그 느낌은 오직 여행만이 선사해주는 것이었다. 책과 영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느낌이었다. 빗소리는 잦아들고 식당 안은 한층 더 포근해졌다.
Store Bededag(Great Prayer Day)에 관한 기사
https://www.thelocal.dk/20150430/7-things-to-know-about-denmarks-great-prayer-day
덴마크 교회 및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오마이북, 2014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096106
<상상 속의 덴마크> 에밀 라우센&이세아, 틈새책방, 2018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649025
북유럽 신화를 지리적 특성과 문화와 관련하여 살펴보는 책
<처음 만나는 북유럽 신화>, 이경덕, 원더박스, 2018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05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