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19.05.19 삼쇠섬 10일차(덴마크13일차)

by 김지현
나의 여행은 아직 멀고 하루하루는 차츰 일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삼쇠섬에서 꼬박 일주일을 보냈다. 한 주간 밭과 식당을 오가며 일하고 동네 사람들과 식사 자리도 가졌다.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뜬다. 꽃과 새와 토끼가 많은 동네다. 잠시 누운 채로 새소리를 듣다가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침을 먹는다. 온갖 곡물과 말린 과일이 섞인 뮤즐리를 우유에 말아 먹는다. 먹은 그릇은 곧장 씻어 놓고 옷을 갈아입곤 집을 나선다. 여느 덴마크 사람처럼 자전거를 타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일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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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과 식당은 모두 집에서 자전거로 5분 거리 안에 있다. 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눈으로, 혹은 한 손을 들어 하이, 하고 인사한다. 이 동네 사람들은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짧지만 진심을 담아서 인사한다. 지나가던 차들도 사람이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창 너머로 인사하고, 우리와 대화하던 스티니도 멀리서 인기척이 나면 대화를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다시 대화를 이어나간다.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일이 일과인 동네에서 나도 몇 번의 손인사와 눈인사를 나누며 지내고 있다. 종종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도 이제 내가 잠시 들린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서 지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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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알아낸 재밌는 몇 가지가 있다.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종종 가는데 당연히 집에서 입은 차림 그대로 가볍게 다녀온다. 집에서 입는 차림이라고 해봐야 품이 크고 편한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은 채인데, 길을 가는 사람이나 가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본다. 발을, 그러니까 아마도 슬리퍼를 신은 발을. 그러고 보니 다들 동네 사람들인데도 슬리퍼를 신은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아직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눈에 띄게 힐끔대는 눈빛을 오직 ‘발’에 보낸 걸로 봐서는 어떤 이유가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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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비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삼쇠는 코펜하겐과는 날씨가 조금 다른데, 코펜하겐은 평균적으로 하루에도 한 번 이상 비가 왔다. 짧게 스치는 비와 맑은 하늘이 교차하는 날이 일반적이어서 일일이 우산을 준비해 다니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삼쇠는 대부분 맑은 날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종일 비가 왔는데 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진 않았지만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은 채 비를 맞으며 걸었다. 이건 스티니에게 물어봤는데 스티니는 그런 것에 관해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덴마크 사람들은 거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까 그렇겠지?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긴 힘드니까. 스티니의 말을 듣곤 그렇겠다 싶어서 그 날은 나도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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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오기 전, 이곳에서도 그저 삶이길, 하고 어깨를 도닥여주던 이가 생각난다. 아직 내게 이곳은 생활보단 환상에 가깝다. 꽃과 새와 토끼가 어우러진 풍경들이 그저 좋아 보이고 이들의 웃음과 여유가 꿈속에서 그리던 것처럼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아직 멀고 하루하루는 차츰 일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밭과 식당으로 나가는 길은 이제 익숙하고 밭과 식당에서는 물어보지 않고 내 손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겨나고 있다. 끼니를 해결하고 청소하는 일을 떠넘길 수 없고 노동의 값은 하루하루 몸에 기록되고 있다. 그러자 언제나 나보다 일찍 나와서 준비를 마쳐놓는 여기 이곳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식당 주방에 나가면 내 몫의 할당량을 미리 꺼내 준비해놓은 스티니가 있고, 밭에 나가면 킴이 언제부터 쪼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자세로 밭일에 열중하고 있다.

돌아감은 저 멀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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