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23 삼쇠섬 14일차(덴마크17일차)
실은 행복 그 자체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은 스티니와 함께 여름 성수기 동안 쓸 비트 절임을 대량으로 만들기로 했다. 훔뭴러를 만든 이후로 매일 스티니에게 새로운 음식 한가지씩을 배우고 있었다. 덴마크 도심에서 맛볼 수 있는 일상 음식은 사실 다른 문화권의 음식 비중이 높다. 코펜하겐에는 작은 동네에도 일본식 스시집과 베트남 음식점이 많다. 한식 하면 딱 떠오르는 고유한 이미지처럼 덴마크 전통 음식 하면 떠오르는 식문화는 풍부하지 않다. 척박한 자원 탓에 오래전부터 다른 문화권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식문화가 일상에 녹아들었다. 덕분에 일반 가정집에서도 다양한 음식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먹는다.
그중에서도 스티니네 식당처럼 지방 유기 농가의 식당들은 좀 더 덴마크 전통 일상식에 가까운 편이다. 스뫼레브레(Smørrebrød)라고 하는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형태인 훔뭴러(håndmadder)는 다양한 토핑을 얹어 먹지만 양념 맛이 결코 강하지 않다. 코펜하겐에서 먹어 본 스뫼레브레도 그랬지만 각기 재료 본연의 맛을 더 잘 살리는 정도로만 조리한다. 그래서 스티니에게 배운 실제 식당에서 파는 음식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재료의 신선도다. 직접 키운 작물을 당일 판매분만큼만 아침마다 곧바로 밭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그 어떤 요리법으로도 그 자체의 신선도와 맛을 흉내 낼 수가 없다. 척박한 땅이지만 그 속에 악착같이 뿌리내리고 자란 작물들은 다양한 비료와 인위적인 환경 조성으로 만들어낸 당도만 높은 과실들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고소하고 달고 시고 쌉쌀한 여러 맛들이 어느 하나를 강조해서 내세우지 않고 오밀조밀하게 어우러져 풍부한 맛을 이루는 그런 ‘맛있음’이었다. 그건 덴마크 문화 그 자체와 많이 닮아있었다.
스티니에게 요리를 배우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스티니는 삼쇠의 이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고 식당을 운영하면서 다른 도시의 덴마크인들과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을 만나며 살아왔다. 킴과 함께 네 명의 자녀를 키워냈고 여러 도시를 여행했지만 모국을 떠난 적은 없다. 그가 들려주는 이곳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들어온 행복지수 1위인 나라에 대한 환상을 한꺼풀 벗겨주었다.
복지 강국인 덴마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동등하게 제공받아야 하는 영역들에 대한 복지가 잘 갖추어져 있다. 교육, 의료 서비스가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제공되고 젊은이들의 독립을 위한 지원금까지 국가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느 삶이 그렇듯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높은 물가와 취업을 위해서 도시로 몰려가는 청년들, 한국 못지않게 높은 집값, 길고 황량한 겨울을 견디며 이들 역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특히 스티니는 코펜하겐의 인구 밀도를 생각하며 고개를 젓고 식당을 찾는 몰상식한 관광객들에 시달리며 힘겨워한다. 여름 한 철 장사로 한해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쉼 없이 단체 손님을 받고 일하면서도 사람이 싫다며 인상을 찌푸리는 스티니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행복지수가 1위라는 것은 뭘 뜻하는 걸까. 엄청난 부와 명예와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극강의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걸까.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과 더 많은 돈을 쥐기 위해 하루하루를 피폐하게 보내는 생활에는 행복해지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만 실은 행복 그 자체에 대해 우리는 고민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보다 무언가를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노력치에 근접하는 보상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신뢰로부터 기인한다. 또한 일하고 돈을 버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때문에 즐거이 일하는 자세와 일하는 중간중간에도 부러 여유를 만들어 잠시 쉬어간다. 마당에 나가 예쁜 꽃을 따고 아기자기한 티슈를 골라 이렇게 저렇게 접어가며 생일파티 예약을 준비하는 동안 과연 이런 과정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꽃을 화병에 꽂고 바라보며 나는 그 순간 참 행복했으니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식의 변화는 사실 가장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