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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May 09. 2020

코리아컬처페스티벌

19. 6. 22-23. 스반홀름 8일차(덴마크49일차)

같은 모어(母語)를 가진 사람들을 전혀 다른 나라에서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나 신비로운 중력을 일으키는구나 하고.





스반홀름에서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이번 주말은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코리아컬처페스티벌에 가기 위해 1박 2일로 다녀올 예정이었다. 마침 이번 주말이 스반홀름 축제가 열리는 날이라 아쉽기도 했는데 또 이 여정은 그 나름대로 기대가 됐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가는 코펜하겐이 기대됐다.



스반홀름에서 코펜하겐까지는 2시간 남짓 걸리는데 아무래도 외진 지역에 있다보니 한 번에 갈 수가 없다. 이른 아침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프레데릭순드(Frederikssund) 역에서 열차로 코펜하겐까지 갔다. 많이 걷지도 않고 단번에 환승했지만 아무래도 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 도착하자 역내며 바깥 풍경들이 낯익었다. 처음 생경한 눈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기에 바빴던 때가 오래전인 것처럼 덴마크의 풍경이 이젠 익숙했다. 역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먹고 페스티벌이 열리는 뇌어포트(Nørreport) 역 근처 코펜하겐 문화센터로 향했다. 날은 더없이 맑고 화창했지만 바람이 조금 찼다.





축제 장소에 다다르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반겨주었다. 시식 코너에서 풍겨오는 불고기 냄새였다. 이미 냄새에 들뜬 마음으로 조그만 광장에 들어섰다. 축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규모였지만 덴마크에 온 이래로 한국인들을 가장 많이 만났다. 아이들이 광장 여기저기서 뛰놀고 곳곳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외국인과 덴마크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순식간에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에 온 것처럼 모든 광경이 정겹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한국 음식 냄새가 단숨에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곳에 온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히라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삼쇠섬에서 잠시 함께 살았던 히라씨는 코펜하겐에 자리를 잡고 일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히라씨는 일자리를 구하는 동안 이번 페스티벌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다고 했다. 인파 속에서 히라씨가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쇠얀과 나는 신나게 삼겹살과 불고기를 시식했다. 





코리아컬처페스티벌(Korea Culture Festival)은 매년 주덴한국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코펜하겐김치페스티벌(Copenhagen Kimchi Festival)’과 같은 행사다. 2019년이 덴마크와 한국의 수교 60주년 기념해라 여기저기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공연과 행사들이 기획됐다. (마침 삼쇠섬에 있는 동안 덴마크 왕세자가 한국에 방문했고 스티니와 함께 신문기사를 보며 뜻깊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경제적 교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기사 내용을 통해 우리는 스티니와 킴이 생산하는 맥주도 한국에 수입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더랬다.) 덴마크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018년 기준 약 680명 남짓으로 많지 않다. 덕분에 코펜하겐에서 오대환 목사님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인교회와 한글학교를 통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코리안컬처페스티벌도 한인교회 분들이 주축이 되어 부스 운영과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쇠얀과 나는 부스를 돌며 한국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음식을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이유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하게 덴마크에 오게 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외모를 갖고는 있지만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먼 삶이었다. 오히려 한국에서였다면 우리는 영영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조금의 교차점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는 평범한 삶의 궤적에서 동떨어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포개어졌다. 과연 이처럼 거대한 우연이 가능할까? 이처럼 거대한 힘이라면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아도 괜찮을까?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해도, 이름도 얼굴도 모두 잊는다해도 우리는 분명한 아주 특별한 순간을 함께 머물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랜만에 맛보는 아주 비싼 호떡을 먹으며 주위에 가득한 한국인들을 신기한 눈으로 좇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 모어(母語)를 가진 사람들을 전혀 다른 나라에서 만난다는 것은 이렇게나 신비로운 중력을 일으키는구나 하고.




1박 2일의 코펜하겐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자 스반홀름은 축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실컷 먹고 한국말도 실컷 하고 돌아왔는데도 꽤 고된 여정이었는지 마을에 들어서자 안도감과 함께 피로가 몰려왔다. 새삼 덴마크에서는 이제 여기가 내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풀고 씻고 나오자 축제를 마무리하고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본파이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인 빌딩 뒷마당에 쌓아 올린 나무더미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마을 사람들이 와인과 맥주를 들고 하나둘 모여 앉았다. 모닥불이 점점 화력을 키워갔다. 누군가의 맞이 인사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어로 된 노래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화사하게 웃으며 서로 눈을 맞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표정만으로도 분명 즐거운 노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불꽃이 타닥타닥 나무를 태우고 그 앞에 둘러 앉아 같은 노래를 함께 부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따스함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모어는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말을 완벽히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속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목소리와 노래 속에 함께 있음 만으로도 나 또한 이곳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번졌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스반홀름 마을에 살고 있다.     



♬ 김목인 “Svanholm”


이런 서늘한 오전 창가에 서면

난 그 곳의 이 빠진 컵들을 생각하지

우린 서로 다른 잔들을 하나씩 골라

커피와 우유를 같이 섞어 마셨네     


알 수 없는 언어의 작업회의를 들으며

탁자 위의 사과들을 나눠먹었지     


흙 묻은 장화를 하나씩 신고

숲의 너머에 있는 밭으로 가네

여기저기 풀섶에 흩어져 있는

달팽이를 밟을까 조심하면서     


이런 서늘한 오전 창가에 서면

난 그곳 낡은 창문들을 생각하지

우린 사다리를 타고 창문을 내려

잔디 위에 늘어놓고 색을 칠했네     


알 수 없는 언어의 라디오를 들으며

유리에도 조금 튀기며     


페달이 조금 낯선 자전걸 타고

숲의 너머에 있는 숙소로 가네

여기저기 길 위에 흩어져 있는

웅덩이를 밟을까 조심하면서     


https://www.youtube.com/watch?v=9DEQ5W2zuoA





*덴마크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행사와 정보들은 주 덴마크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알 수 있다.

http://overseas.mofa.go.kr/dk-ko/index.do

https://www.facebook.com/koreaembassydenmark/



*한인교회와 한인회 정보는 주 덴마크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알 수 있다.


한인회 
전화 : +45 29 71 25 80
E-Mail :kocoadk@gmail.com
회장: 고상준

한인교회
주소 : Gothersgade 109, 1123 København K
전화 : +45 26 28 17 08
E-Mail : sagangdk@gmail.com
목사: 오대환



*한인교회

덴마크 교회를 빌려 예배가 열리므로 일요일 12시부터 3시까지만 한인교회로 사용된다.


https://www.google.co.kr/maps/place/Reformed+Church/@55.683842,12.573668,17z/data=!4m13!1m7!3m6!1s0x4652531ae4fa37f1:0x4cb2ac55ee1ffe38!2zR290aGVyc2dhZGUgMTA5LCAxMTIzIEvDuGJlbmhhdm4sIOuNtOuniO2BrA!3b1!8m2!3d55.683842!4d12.575862!3m4!1s0x0:0x92354ccce6e4ddd!8m2!3d55.6838681!4d12.5751789?hl=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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