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07. 13 스반홀름 28일차(덴마크69일차)
편안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먹고 서로 마주 보는 이 순간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주말을 맞아 한국인 고스톱 대전이 펼쳐졌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유곤씨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쇠얀이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을 떠나올 때 소중히 챙겨왔는데 정말 여행 내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인천을 떠나기 전 무박 하루를 보낼 때도 새벽의 공항 로비에서 맞고를 치며 시간을 보냈고 수화물을 몽땅 잃어 망연해하던 코펜하겐의 숙소에서도 맞고로 마음을 달랬더랬다. 삼쇠와 스반홀름에서는 맞고 대결로 설거지와 청소 당번을 정했고. 잔잔한 시골 생활에 우리만의 일탈로 자리 잡았다.
문&유곤씨가 지내고 있는 방에 자리를 펼쳤다. 농번기라 게스트가 가득 찼고 덕분에 게스트들이 주로 쓰는 하우스 맞은편 동으로 문 커플이 방을 옮겼다. 사야카가 새로 오면서 따로 떨어진 방을 써야 했는데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울까봐 문 커플이 배려한 것이었다. 대신 따로 떨어진 방에 자기들만의 주방과 거실이 있어서 조금 휑하긴 했지만 훨씬 아늑하고 편하다고 했다. 우리는 집들이 하듯 문 커플네 방으로 들어서서 맞절하며 인사했다. 문 커플은 담요를 깔고 호박전까지 부쳐놓고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멋쩍게 웃으며 네 명의 한국인이 둥그렇게 앉았다. 호호 웃던 얼굴은 어느새 전투모드로 바뀌어갔고 “안돼!” “제발!” 하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오늘의 내기는 점심 식사 준비와 뒷정리. 한 명씩 돌아가며 광을 팔고 화장실도 한 번 안 간 채 고스톱 대전이 이어졌다. 팔 안쪽과 오금에 땀이 찼다. 2시간의 고와 스톱의 대장정이 끝났다. 쇠얀과 문은 식사 준비, 뒷정리는 유곤, 나는 왕좌에 앉았다.
메인 키친으로 자리를 옮겨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주방을 오가며 놀리다가 테이블 세팅을 도왔다. 쇠얀이 밥을 짓고 양고기를 구웠고, 문이 만든 시금치 무침과 계란찜까지 더해 한 상이 차려졌다. 선선한 바람과 맛있는 음식이 한 상 가득, 한국에서는 닿을 수 없었던 이들이 어느새 내 하루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묘한 두근거림이 어우러졌다. 부산 사람인 나와 포항 사람인 문, 고창 사람인 쇠얀과 서울 사람인 유곤은 스반홀름이 아니었더라면 정말이지 스칠 우연이라도 있었을까. 삼쇠섬에서 히라를 만난 것처럼 이 먼 곳에서 만난 누군가와 깊어지는 기분은 여전히 신비하다. 이들과 마음을 터놓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인연이란 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편안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함께 먹고 서로 마주 보는 이 순간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흘려보내기엔 이미 내게 진한 흔적을 남기는 중이다.
유곤씨가 준비한 와인까지 곁들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식사를 했다. 다 함께 뒷정리를 하고 각자의 여유를 위해 흩어졌다. 운동하러 가는 쇠얀을 따라 메인 키친 2층에 있는 헬스장에 갔다. 아담한 방 안에 런닝머신부터 로잉머신까지 기구들이 알차게 들어차 있었다. 나는 한 켠에 놓인 안마의자에 몸을 뉘었다. 안마의자의 손길에 알딸딸한 기분으로 낮잠을 한숨 잤다. 잠결에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땀 흘리는 쇠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달콤한 노곤함이 온몸으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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