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부터 심상치 않던 인생
2층짜리 저택에 개가 뛰놀 수 있는 마당이 딸린 집.
경제적 가치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나에게는 그저 큰아빠는 ‘큰 집에 사는 분’이었지만 나이가 먹은 지금에서 돌아보면 당시 큰 아빠가 얼마나 잘 나갔는지 알 수 있다.
4남매 중 막내인 우리 아빠는 그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당구장이 딸린 볼링장을 하나 관리하고 있었으며 집도 작지 않은 크기의 아파트에서 살았다. 자동차면 자동차, 핸드폰이면 핸드폰 매 번 어디서 구해오는지 자꾸 비싸고 신기한 것들도 사 왔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빠는 얼리 어답터였다.
그 모든 것들을 아빠의 노력으로 얻어낸 것은 아니었으나 잘 나가는 큰 형들의 존재는 그 모든 것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하였다.
큰 아빠에게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었는데, 사촌 형은 나를 잘 챙겨주는 거 같으면서도 자주 괴롭혔다. 내가 큰집에 놀러 갈 때면 문 앞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음..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정말 컸다.. ) 안고 있다가 우리가 문을 엶과 동시에 놓아줬다. 그러면 그 커다란 강아지는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며 뛰쳐나오는데, 어린 나에게는 그것이 그렇게나 공포스러웠다.
매 번 나는 겁에 질려 문을 박차고 나와 강아지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뛰어가면 개는 놀아주는 줄 알고 쫓아온다는 것을.. 아직도 큰 개들을 보면 가까이 가지 못하는데, 이때의 기억이 한몫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동네를 서너 바퀴 돌면서 도망 다니다가 주저앉아 서러움과 무서움에 엉엉 울고 있다 보면 어느새 사촌 형은 다가와 내 손을 잡고 근처 문방구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며 내가 고르는 장난감과 불량식품들을 몇 만원치 사주었다.
그때가 90년도 중반이었으니까 중학생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하지만 사촌 형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몇만 원씩 썼으며 다른 동생(나에게는 다른 사촌 형)에게도 똑같이 베풀었다. 얼마나 큰아빠네 집이 잘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큰아빠와 작은 큰아빠 그리고 아빠는 한 몸과 같았다. 큰 아빠가 사업을 하면 작은 큰아빠와 아빠는 보증을 섰다. 보증을 함부로 서면 안된다는 말이 그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아빠가 보증을 섰던 이유는 그만큼 큰아빠가 망하지 많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아빠도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랐던 것이다.
큰아빠가 사업을 새로 시작하였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하였다. 어렴풋이 남은 기억을 꺼내보자면 아파트 단지들이 올라가는 현장을 우리 모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큰 아빠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이 곳에서 우리가 살 거라고 외치셨다. 우리는 정말 그럴 줄 알았다.
돌아보면 내 인생도 거의 대부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한 번만 이라도 마음대로 흘러가면 좋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린 시절부터 단 한 번도 마음대로 흘러간 적이 없는 듯싶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 인생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치 앞도 알지 못하며 살아간다.
1997년 IMF가 터졌다.
많은 회사들이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굳이 IMF와 부도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큰아빠도 그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큰아빠의 실패를 예상하지 못하였던 아빠와 우리 가족은 그대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그렇게 잘 나갈 줄 알았던 내 인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알게 되어 버렸다.
이미 이때부터 내 인생은 요동치며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