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은 다치면서 큰다고 그랬나? 사실 안 다치는 게 최고인데..
"그게 기억이 나?"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다섯 살, 여섯 살 때의 일도 기억하고 있는 나를 보고 놀란 엄마.
못해도 15년, 16년은 지난 거 같은데 나는 아직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많이 남아있다.
이 기억력이 공부라는 영역에서 발동하였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 텐데 공부 쪽에서는 이 능력은 항상 고장이 나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기억들에는 조금씩 공통점이 있는데 뭔가 임팩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까불이였다. 무모했다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생각보다 좀 많이 까불거렸다.
친구들과 놀다가 싸워서 어디 한 군데 물려오는 건 일상이었고, 조금은 위험한 행동들도 서슴없이 하였다. 경각심도 없이 까불거리며 다니다 보니 내 온몸은 상처를 항상 달고 살았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은데 그중에서 임팩트가 너무 강했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상처들도 있다.
첫 번째 상처는 왼쪽 검지에 있는데 칼로 살을 도려내어 생긴 흉터이다.
어린 시절 나는 공룡을 좋아하여 공룡 장난감이 많았다. 하루는 동생과 둘이 집을 보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무슨 생각이었는지 요리를 해주겠다며 커터칼로 아끼던 공룡 모형들을 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왜 동생이랑 단 둘이 집을 보고 있었으며, 커터칼은 어디서 구했는지 참 의문이지만 어린 시절에도 나는 참 최선을 다 하는 아이였다. 열심히 칼질을 하다가 삐끗 난 칼은 그대로 내 왼쪽 검지를 함께 요리하였다. 그날 나는 피와 눈물을 같이 흘리며 엄마를 맞이하였고, 뭐.. 그다음은 난리난리 개 난리였다.
두 번째 상처를 남들보다 조금 큰 두 앞니이다.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자리 잡았을 무렵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정자 근처에서 친구들과 멀리 뛰기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일반적인 멀리 뛰기에 조금 흥미를 잃었던 나는 갑자기 눈을 감고 멀리 뛰기를 하였고 그대로 벤치에 안면을 강타하다. 어린 나이에 나는 임플란트를 할 뻔하였다..
세 번째 상처는 이마에 있는데,
용달차 위에서 놀던 나의 눈에 옆 날개가 내려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쇠고리가 들어왔다. 엄청난 까불이던 내가 그것을 그냥 넘길 리가 없었다. 쇠고리에 올라가서 버텨보겠다고 쇠고리에 온 체중을 맡겼던 나는 고정돼있던 고리가 풀리면서 그대로 고꾸라져 애꿎은 이마만 찢어져 꿰매게 되었다.
마지막은 오른쪽 무릎.
찜질방에 있던 러닝머신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신기함에 이것저것 만지며 장난을 치던 나는 갑자기 깽깽이로 달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호기심을 충족시기기 위하여 달리는 러닝머신에서 한 발을 들자 몸은 바로 균형을 잃었다. 그때, 넘어지며 벨트에 무릎을 쓸렸는데 신기하게도 무릎은 화상을 입었다.
이외에도 자잘한 사건까지 참 많이도 다쳤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좁은 골목을 달리다 머리를 부딪혀 땜빵이 생긴 이후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으니... 참 오랫동안 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은 나를 어떻게 감당하였나 모르겠다. 이게 바로 사랑인가...
참고로 지금은 세상 제일가는 엄살쟁이다. 내가 다치는 것도, 누군가 다치는 것도 정말 싫어한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건강이, 안 아프다는 것이 최고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가끔 그렇게 기도한다.
나를 포함하여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였으면 좋겠다고.
몸도 마음도.
아프다는 건 본인을 떠나 주변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만들기 때문에..
그냥 모두가 건강하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