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서울은 처음인데요

by Eric Kim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분위기는 무척이나 무거웠다. 집이 망했고, 전주에서 버티고 버티다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올라온 상황이다 보니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올라올 당시, 1,000만 원이 있었다고 했다.

4인 가족이 서울에서 1,000만 원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90년대 후반이었어도 한정적이었다.


현 고려대학교 이공관 쪽에 안암오거리라고 교차로가 있는데 그곳에서 고대 정문 쪽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다 보면 벽산아파트라고 있다. 벽산아파트가 생기기 전에 그곳은 쓰레기가 참 많고 황무지 같은 큰 언덕이었는데, 그 언덕 위에는 낡은 집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그중 어느 집구석 남는 방에서 우리 가족은 서울생활을 시작하였다.


참 특이한 집이었다.

대문을 들어가자마자 옆쪽으로 빠지는 긴 길이 있었고 그 끝에는 우리 가족이 사는 방이 있었다. 디귿자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모양의 집이랄까..


우리 가족은 대문을 사용 안 하고 방 바로 옆에 있는 나무판자 같은 쪽문을 이용하였는데 하필이면 이 문을 나가면 바로 등굣길이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는 그게 그렇게 창피하였다.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올 때, 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친구들은 우리 집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거 같다. 스스로 우리 집이 창피하였을 뿐이지 적어도 집 가지고 놀린 친구는 없었다.


얼마 전 초등학생 아이들 사이에서 빌거(빌라사는 가지), 기생수(기초수급자), 엘사(영구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등 사는 집에 따라서 선을 긋고 놀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경제 능력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잘못된 어른들의 인식을 아이들이 보고 배운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친구들이 저렇게 놀렸다면 내 인생이 분명 삐뚤게 엇나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의 첫 서울생활은 시작되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벽 한가운데 덩그러니 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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