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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간의 미학 Sep 08. 2024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

근태관리 업무에 대하여

인사, 총무, 노무 업무를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맡게 되는 기본적인 업무로 근태관리를 꼽을 수 있다.

근태관리라고 하면 직원들의 출근 및 퇴근에 따른 근로시간, 휴게시간 등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직원들이 제시간에 출근하는지 확인하고, 퇴근기록과 연장근무기록 간 차이가 없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실무적으로는 지각 · 결근 그리고 수당의 부정수령 여부를 확인하는 업무라고 보면 된다. 업무 자체는 반복적이고, 단순 노동인 경우가 많아 주로 해당 부서의 막내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서도 그랬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맡아 직원들에게 직접 사내 메신저로 확인 쪽지도 보내고, 경고장도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어쩌다가 나는 아직도 근태관리 업무를 하고 있을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업무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종종 직원들과 실랑이하는 경우도 있고, 안하무인인 인간들도 있다. '1분 밖에 안 지났는데 지각은 너무 하잖아요!', '1분이랑 10분 지각한 거랑 같다고 볼 수 있나요!', '저는 9시에 찍었어요! 시스템 시간이 오류가 있는지부터 확인해 보세요!', '지각한 게 아니라 그 시간만큼 연차 올린 겁니다!'(시스템상 연차유급휴가를 30분 단위로 사용가능하다) 막내들이 이런 인간들과 마주하면 난감해하거나 불편한 상황을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자원하여 근태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연차도 있고, 경험도 생기다 보니 어떤 직원분들이 공격을 해도 타격이 크지 않다. 한번 싸워보자고 공격이 들어오면 잠시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규정과 친절함으로 응수해 준다. 아마 많은 직원들이 나를 미친놈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상 시업시간은 9시로 정해져 있다. 그렇다면 9시 1분에 출근한 사람은 지각인가 아닌가? 나의 상식으로는 이걸 따질 만한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상식과 다른 상식이 세상에는 많은 것 같다. 그들의 생각이 틀리지는 않을 수는 있으나 할 수 없다. 사내 규정은 9시 1분을 지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나는 많은 이들의 비난과 험담에도 불구하고 근태관리 업무에 굉장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근태관리에 집착할까? 그냥 막내한테 맡기고 지각 좀 눈감아주고, 사람들하고 실랑이하지 않아도 누구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는데 말이다.


사실 요즘 많은 회사에서 근태관리는 그렇게 중요한 이슈는 아닌 것 같다. 유연근로제니 재택근무니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근로자에게 근로시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상황에서 근태관리를 빡빡하게 하는 모습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어 보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제조업의 제조를 맡고 있는 사업장에서 근태관리는 곧 생산성과 연결되어 있는 영역이다. 시간 단위로 공정이 짜여있고, 협업해야 하는 곳에서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조직관리의 가장 기초되는 규율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근태관리가 조직관리에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이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는 점이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거리에 방치하면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읽혀 더 큰 범죄가 양산될 수 있다는 '짐바르도'의 실험에 기초한 심리학 이론이다. '자동차'를 '사내 시스템 또는 규정'이라고 해보자. 한편, '깨진 유리창'을 '지각 · 결근 · 부정한 수당수령 등을 용인하는 모습'으로 견주어보자.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각을 하든, 결근을 하든 나와 무슨 관계겠는가? 하지만 점차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피해를 본다고 인식하게 된다. 누군가는 자동차 부품을 훔쳐다가 팔고 있다. 남들은 늦게 출근해도 문제가 없는데, 나는 일찍 나와서 왜 더 일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은 발전하여 적극적으로 자동차 부품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각과 결근, 부정수령이 당연해진 것이다. 마침내 부서진 자동차처럼 사내 시스템과 사내 규정은 유명무실해진다.


IT 업계 중에서도 조직문화가 선진적이라고 평가받는(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배달의 민족'에서 내걸고 있는 "일 잘하기 위한 11가지 방법"을 주목하게 되었다. 일 잘하기 위한 11가지 방법 중 첫 번째가 바로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이다. 다른 여러 가지 노하우가 있겠지만 첫 번째로 이 문장을 내세운 것은 의미가 있다. 더 이상 성실함이 이 사회의 1번 가치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동료와의 신뢰, 규정에 대한 준수와 같은 기본 가치에 대한 강조를 위하여 해당 문장을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복지는 최고의 동료라는 말이 있다. 내가 처한 업계의 특성상 모든 사람을 최고의 동료로 채울 수는 없다. 그렇지만 9시가 되었는데 자리에도 오지 않는 동료, 일하지 않았는데 수당을 챙겨가는 동료가 주변에 가득 찬다면? 그것만큼 최악의 복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누군가를 처벌하고 적발하기 위해서 이 업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소한 규율이 전반적인 시스템과 동료에 대한 신뢰를 동반한다고 믿기 때문에 이 업무를 진행한다. 그렇기에 나는 다음 주도 누군가와 실랑이를 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경고장을 줄 것이다.

전국에 근태관리를 하고 있는 많은 동료들이여 힘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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