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of Street Woman Fighter 관람후기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약 3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 퇴근 후 봤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World of Street Woman Fighter(이하, WSWF)입니다.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6개의 크루들이 댄스로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배틀과 미션을 치르면서 서로 경쟁하고 우승팀을 가리는 시스템이었는데요. 사실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면도 있고, 억지로 경쟁 분위기를 유도하고 감정을 격화시키다 보니 어색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SWF를 정주행 한 이유는 저는 춤을 전혀 추지 못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춤에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느꼈고, 그들의 열정이 화면 밖을 뚫고 나오는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고양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WSWF 콘서트를 갔습니다. 가수들이 나오는 콘서트나 뮤지컬을 본 적은 있어도 오로지 춤으로만 구성된 콘서트를 간 것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역시나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열정 가득한 무대를 보며 저 또한 에너지를 충분히 얻었습니다. 동시에 콘서트 무대를 보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요. 오늘은 머릿속을 스쳐간 몇 가지 생각에 대해서 써보려고 합니다.
콘서트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드디어 춤이 그 자체로 인정받는 시대가 왔구나"였습니다. 예전에는 "백댄서'라고 불리던 이들이 이제는 'Back'이란 수식어를 떼고 당당히 '댄서'라는 이름으로 단독 콘서트를 여는 모습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물론 수많은 댄서들이 자신만의 영역에서 길을 개척해 왔지만 대중적으로는 누군가의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로 댄서를 인식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춤이라는 행위 그 자체로 예술이라 인정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요리를 생각해 보면 비슷한 변화를 겪었던 것 같습니다. 요리도 예전부터 전문적 영역이고 하나의 예술적 행위였죠. 그러나 과거에는 가치를 크게 인정받지 못하다가 이제는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방장이 아니라 셰프라고 칭하며 스타로 대접하고 있죠. 춤도 이제 그런 단계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미디어가 이런 영역을 개척해 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예술 장르들이 대중들에게 더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프로그램에서는 경쟁의 형태로 인지도를 높이고 바이럴을 키워왔지만, 콘서트 무대에서는 그런 경쟁적 요소가 사라진 채 순수한 춤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결국 가장 아름다운 건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술의 가장 아름다운 점은 누군가를 이기지 않고도 그 자체로 타인에게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TV에서는 "누가 더 잘하나", "어떤 크루가 이길 것인가"에 집중했다면, 콘서트에서는 그냥 "와, 저춤 정말 멋있다", "다들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인다"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격렬한 춤과 행복한 표정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고, 경쟁 없이도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예술을 원래 그런 거였죠.
그녀들의 춤을 보면서 삶을 살아가는 방법 자체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정말 내가 잘하는 것을 중심에 놓고, 상황에 맞게 변주를 주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었습니다. Motiv 크루가 대표적이었는데, 미국 정통 힙합이란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과 강점을 확실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미션에 맞춰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해 내더군요.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적응하는 모습이었죠. 두 번째는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여 상황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생각하여 맞춰가는 방식이었습니다. 한국의 Bumsup 크루는 각기 다른 장르의 댄싱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있었기에,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실행해 내는 뛰어난 능력이 있었습니다. 둘 다 멋지고 치열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내 색깔을 고수하는 타입일까, 아니면 상황에 맞춰온 타입일까, 스스로 고민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콘서트장을 나오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춤이라는 예술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 받을 수 있는 것 같아 느낀 기쁨도 있었고, 경쟁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예술의 본질을 다시 확인한 것에 대한 감사함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춤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내 것을 지키면서도 상황에 맞춰 변화할 줄 아는 유연함,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예술가들이 더 많은 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저 또한 제 일에서 그들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P.S. 제 와이프는 쿄카 팬이었는데 토요일에 나오지 않아 실망이 컸습니다. 저는 리에하타와 말리가 그렇게 멋있더군요. 여러분들도 혹시 좋아하는 댄서가 있으신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