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트렌드노트
매년 10월쯤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내년을 준비하게 됩니다. 저는 매년 이맘쯤 '트렌드노트'라는 제목으로 '생활변화관측소'에서 발간하는 책을 읽습니다. 벌써 이 시리즈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네요. 이번 판은 1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0년 간의 서문을 모아놓은 특별판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유행을 알려주고 그것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는 것도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물론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은 유행을 파악하고 변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한 그 이상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유행과 변화 안에 내재된 욕망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내 안에 있는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나 할까요? 거대한 소비 자본주의 하에서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 선택은 무엇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트렌드란 여러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흐름은 인간 욕망의 합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가지냐에 의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고, 욕망을 소유한 개인들의 경향성은 곧 트렌드란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트렌드라고 불리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욕망에는 서로 다른 두 차원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거대한 대중의 욕망 안에 편승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회적 동물로서 안전함을 느끼고, 경쟁 안에서 자신이 뒤처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것이죠.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대중과 하나 되기 이전에 개인으로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거대한 대중의 욕망이 투여된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형성되는 것이죠. 이러한 서로 정반대의 욕망을 트렌드노트에서 "트렌드는 '길항'이다"라는 표현으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트렌드가 '길항'이란 말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면 그에 반대되는 욕망의 분출은 필연적이란 뜻입니다. 트렌드노트가 하는 일은 두 차원 모두에 있는 욕망들을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트렌드는 길항이다. 길항이라 함은 한쪽이 차고 넘치면 그 반대되는 것이 부상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사람은 지금 뜨는 것의 반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의 반대로 지금 트렌드가 형성되었는지 살펴본다. '효율'의 시대에 부상하는 '낭만', AI 시대에 부상하는 아날로그 취미, 도파민이 차고 넘치자 나타난 도파민 디톡스, 혼자의 시대에 부상하는 오프라인 공간의 대규모 잔치와 축제들이 그 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트렌드를 이해하고, 반대의 전략을 준비하자."
- 2026 트렌드노트 P.62 -
우린 AI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아날로그 감성을 찾습니다. 동시에 디지털 세상의 편리함에서도 굳이 논디지털한 취미와 오프라인 모임을 만듭니다. 지난 10년 간 자기 계발의 성공 신화가 이어지고 지금도 그 명맥이 이어지지만 성공보다 성장이란 스스로가 이름 붙일 수 있는 부분으로 강조점을 옮겨갑니다. 유행과 변화의 흐름에 집중하면서도 덕질과 OO키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구분 짓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만들어냅니다. 바쁨과 속도가 주는 가치 안에서도 우린 집밥을 찾고, 불안함을 자연스레 공유합니다.
2026 트렌드노트란 욕망의 지도에서 지금 내 마음의 욕망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몇 군데 있어서 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AI 시대를 맞이하는 저의 모습을 관찰해 봅니다. AI 기술에 최대한 적응하고자 하고, 잘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AI로 인해 편리해지고 효율적인 부분을 굳이 대체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공존합니다. 굳이 기획서를 먼저 손으로 써보고, 두꺼운 책을 읽으려고 하고, 긴 글을 써보려고 하는 것이죠. AI가 주는 효율성을 도저히 이길 수 없지만 그 안에서 나의 사고를 절대도 뺏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지금 Brunch에 글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자기 계발의 단상을 살펴봅니다. 지난 10년의 자기 계발의 흐름은 성공에서 성장으로의 변화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외재적으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신화의 허구성이 드러난 결과이기도 하고, 내재적으로는 자기 계발의 시도가 좌초되었거나 개인들이 지쳐버린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미라클 모닝이 아니라 아침에 유산균과 간단한 스트레칭만 해도 기적이라고 마음먹었고, 멋진 글을 쓰는 작가가 되자가 아니라 한 달에 두 개라도 쓰면 작가라는 생각으로 목표를 고쳐 먹었습니다. 루틴을 만들고 루틴을 달성하며 얻은 성취가 곧 나의 성장이라는 방향으로 저의 욕망은 변화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세상의 급속한 변화나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은 불안을 유발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벗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이 이상한 감정이 아니라 불쑥 찾아오는 불안을 함께 살아가야 할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의 감정이 병리학적으로 거부할 대상이 아닌 동행하고 보듬어야 할 대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연초에 우울증에 대해 글로 쓴 것도 그러한 태도의 일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의 분위기였다면 우울증이 나의 약점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숨기려 했을 겁니다. 그러나 저 역시 우울이란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계기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불안과 친숙해지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 보면,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만 보아도 4명의 대통령이 있었고, 두 번의 탄핵이란 거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격리의 시간, 자산 가격의 폭등, IT 기업의 부상이 있었네요. 기술적으로는 빅데이터, 메타버스, 암호화폐가 키워드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인공지능, 나아가 AGI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이 사람들의 삶과 인식에는 거대한 격변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욕망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분명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빠른 시대적 변화에 숨이 막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 와중에 지금 우리의 욕망이 어디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 AI 시대에도 왜 책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는 저는 이 책을 추천하며 읽어보라고 할 것 같네요. 여러분의 욕망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을 통해 한 번 확인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