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선택에 대하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지금, 지난 주말부터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이란 폭격이 시작되었고, 지금은 중동 국가 전체로 전쟁의 범위가 확장되는 양상입니다. 저 멀리 중동국가에서 벌어지는 공습 뉴스는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발발의 현실감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은 연일 이어졌고, 제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증권 앱으로 향했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방산 & 우주 ETF'가 급등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더 사야 하나?"였습니다. 매수 버튼을 누르고 뉴스를 켰습니다. 이란의 한 초등학교가 폭격을 당했고, 최소 170명이 이상이 사망했으며 대부분이 어린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저에게는 '매수 기회'로 읽히고 있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을 참으로 섬뜩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뉴스의 풍경은 대부분 균질했습니다. 전쟁의 상황을 중계하거나 경제적 차원에서의 영향을 설명하였습니다. 주요 경제 뉴스의 헤드라인은 "전쟁이 반도체 업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코스피 1주일 만에 낙폭 최대", "유가 폭등 시 주목해야 할 6 종목"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170여 명의 어린이가 죽은 학교 폭격보다, 코스피 낙폭의 회복 타이밍이 더 큰 뉴스였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전쟁 폭력을 숫자와 지표로 치환하는 데 매우 익숙해졌습니다. "유가 상승률 12%", "호르무즈 해협 봉쇄 리스크", "방산주 급등세" 이런 언어들은 전쟁을 하나의 '시장 이벤트'로 환원시킵니다. 초등학교에서 죽어간 아이들, 평화를 잃어버린 여러 중동 국가 사람들, 영문도 모를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은 이 담론 속에서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닌 타자의 고통을 추상화하는 구조적 폭력일지 모릅니다. 숫자로 환원된 죽음은 더 이상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의 변수가 됩니다. 저 역시 그 구조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전쟁이 아닌 "특수군사작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우스운 일을 이번에는 미국이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했던 것처럼 미국도 동일하게 본인들이 수행하는 일이 "전쟁"이 아닌 "에픽 퓨리 작전"이라고 표현하고 있고, 언론들도 이를 받아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중립화된 언어를 체화하게 됩니다. "공습"이 아니라 타격", "민간인 사망"이 아니라 "부수적 피해", "전쟁" 아니라 "작전" 등 이와 같은 언어들은 폭력을 중립화하고, 우리는 그 중화된 언어 속에서 윤리적인 감각을 잃어갑니다.
우리에게 이란의 상황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란이 핵을 갖고 있다면 그보다 더 분명하게 핵을 갖고 있는 것은 북한이고, 미국이 북한에게 동일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 사회의 담론이 "전쟁 테마주 매수 기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한국 전쟁의 경험마저 경제적 프레임 안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방증인 것 같습니다.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겪은 민족이, 다른 나라의 전쟁을 투자 지표로만 바라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매수 기회"를 말하는 것처럼 내일 우리에게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전 세계도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고 있을 생각을 하니 무섭다는 생각이 드네요.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저 역시 생계를 위해 투자를 하고, 매일 경제뉴스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프레임이 되는 순간, 전쟁을 사실상 용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자체가 이미 윤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뉴스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가와 주가의 요동침인지 아니면 지금 폭격 아래 있을 사람들인지, 이 차이는 단순한 관심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인류 공동체의 구성원이고자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매수 기회"로 읽었던 섬뜩했던 그날 이후 전쟁 관련 뉴스를 볼 때 증권 앱을 먼저 켜는 대신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게 됩니다. 숫자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려 합니다. 170명의 숫자가 아니라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떠올려봅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닙니다. 여전히 저는 경제적 영향을 걱정하고, 제 자산을 돌봐야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걱정이 유일한 걱정이 되지 않도록, 경제적 프레임이 유일한 렌즈가 되지 않도록 의식하려 합니다. 이 땅 위에 전쟁을 쉽게 말하는 그 어떤 사람도 발 붙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최근 전쟁 뉴스를 보며 무엇을 먼저 떠올리셨나요? 혹시 저처럼 섬뜩한 순간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 대답이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싶은지를 말해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조금씩 시선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 작은 전환이 결국 세상의 윤리적 나침반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시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