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에 대하여
살다 보면 '멋있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멋'이란 참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외모가 출중해서? 능력이 뛰어나서? 돈을 많이 벌어서? 물론 이런 것들도 한 사람을 멋있게 보이게 만드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모가 출중하고 능력이 뛰어나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멋'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런 것들이 '멋'의 본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멋은 객관적인 조건이나 성취보다 그 사람이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 삶과 일을 대하는 태도, 자신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와 같은 보이지 않는 모습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몇몇 사람들을 바라보며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에게서 느낀 멋의 요소가 무엇인지 한 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로 멋있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여유로움입니다. 그런데 이 여유로움은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여유롭거나 한가로워서 생기는 여유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누가 봐도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이 하는 사람인데, 신기하게도 그 사람 옆에만 가면 여유가 느껴집니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주변은 바쁘고 혼란하게 돌아가는데 그 사람에게서만 고요함이 느껴진달까요? 그 사람의 옆에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된 느낌을 받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상황을 충분히 감당해 낼 수 있구나'하는 믿음이 생기는 거죠.
더 인상적인 건 주변에서 본인을 놀림감으로 삼더라도 여유롭게 받아치는 모습입니다. 기꺼이 본인을 희화화하며 주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죠. 이런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은 자존심이 강해서 우쭐대는 게 아니라, 진짜 자존감이 탄탄해서 흔들리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는 여유는 사실 본인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멋있는 사람의 두 번째 요소는 결과에 대한 책임입니다. 결과만 강조하는 사회의 불편함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정에 대한 강조만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했으니까 됐어', '노력한 것만으로 의미 있어'라는 말들이죠. 물론 과정이 중요한 건 맞습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동호회나 취미활동이 아니라면 본인이 한 행위에 대한 결과도 책임져야 합니다. 멋있는 사람들은 기꺼이 자신이 약속했거나 맡은 일에 대해 결과로써 책임을 집니다.
기본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통해 증명해 냅니다. 말만 앞서지 않고 실제로 해내는 거죠. 그런데 더 중요한 건 본인이 부족했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있다면 기꺼이 사과한다는 점입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상황 탓, 남 탓 하지 않습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은 결과에서 도망치지 않는구나'하는 신뢰가 생깁니다. 과정을 중시하되 결과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 그런 모습을 보며 '멋'이라 느낀 것 같습니다.
멋있는 사람들의 세 번째 특징은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뜻은 본인의 역할과 위치, 그리고 역량을 파악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보다 본인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나서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아야 할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모든 회의에서 발언하지 않습니다.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기여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구분할 줄 알죠.
또 다른 의미로 타인과 비교해 스스로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라며 본인의 어려움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내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까지 하겠어'라며 자신의 행동을 과도하게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라며 타인에게 은혜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처한 삶의 상태를 지나치게 극화하지 않고 그냥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정말 성숙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이자 멋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윤리의식입니다. 아무리 인성이 좋고, 실력이 뛰어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도 윤리의식이 부족하면 멋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은 위험합니다. 능력 있는 악인이 선한 무능력자보다 주변이나 세상에 더 큰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요.
멋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대가 요구하는 윤리의식을 날카롭게 벼리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괜찮았던 농담이 지금은 부적절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과 지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고 있습니다. 항상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시대적 윤리의식을 삶의 태도로 체화해 내는 것이죠.
누군가 '요즘 세상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말할 때, 멋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 아닐까?'라고 답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올바른 쪽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윤리의식이 주는 멋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 요소를 정리하고 보니, 멋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유로움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쌓인 자신감에서 나오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수행한 과정에 대한 떳떳함에서 비롯되며, 자신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는 성찰의 결과이고, 윤리의식은 평생에 걸쳐 다듬어지는 품성입니다.
그래서 멋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의 삶에서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억지로 멋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방식 그대로가 멋으로 드러나는 거죠. 저 역시 누군가에게 멋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성과만 쫓을 게 아니라, 여유를 잃지 않고, 책임을 다하며, 나 자신을 이해하고, 올바른 가치를 지켜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신에게 멋을 느끼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의 어떤 모습에서 멋을 느끼시나요? 어쩌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스스로도 조금씩 멋있는 사람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