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술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노래를 듣고 있다. 술을 마신 날엔 무리해서 글을 쓰지 않고 누워서 노래를 듣다 잠드는 나지만 오늘은 취기가 미미하기에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켠 채 노래를 듣고 있다. 글을 더 쓸까 말까 고민한 찰나 흘러나온 노래. 검정치마의 "난 아니에요". 나는 듣다가 노래 가사를 노트북에 옮겨 써본다.
좋은 술과 저급한 웃음
꺼진 불속 조용한 관음
이라고 독백하는 검정치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머릿속으로 그의 내밀한 사적 순간들이 휙 휙 지나가는 것 같다. 이 노래가 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사가 한몫해서이다. 단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형성되는 분위기와 이야기가 나의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음이 살짝 섞여 취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는 나의 여러 마음을 들키게 하는 것만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주세요
(...)
난 웃으면서 영업하고 빈말하긴 싫은걸요
(...)
내 시대는 아직 나를 위한 준비조차 안된 걸요
(...)
마마, oh 마마 저들은 나에게 어서 뛰래요
노래를 들으면서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자신과 맞아떨어지는 가사를 만나게 될 때 단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스스로가 표현될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한다. 그러한 놀라움은 공감을 기반으로 하며 카타르시스를 동반하고 이내 그 가사들을 직접 입으로 곱씹어 보게 한다. 우리는 그러면서 스스로가 가수가 된 것처럼 느껴보고는 한다. 나는 지금 가사를 옮겨 쓰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가수가 된다.
해랑사 을신당는 나
노래의 끝부분에 등장하는 이 가사에서 나는 환하게 밝아지는 야경을 느끼곤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를 뒤집은 이 가사에서 해랑사, 을신당는은 마치 종교적 단어 같고 잔뜩 들이치는 기타 노이지와 번지는 듯한 효과 처리로 마치 해랑사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 불꽃은 앞선 가사들이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노래는 자조로 시작하지만 자학으로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다음 곡을 알리는 드럼 비트가 시작되는 것까지를 노래는 포함하고 있다. 해당 곡이 수록된 앨범에서 이어지는 다음 곡은 "Big Love"다. 커다란 사랑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난 아니에요"의 가사와 노래 구성은 스스로에 대한 점검으로 시작해 결국 다음 곡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 느낌이 술 마신 오늘 같아서 글을 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지만 곧 내일을 맞이할 나의 오늘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