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훈 Jun 30. 2022

진짜 해변 동네 출신

Vince Staples "ARE YOU WITH THAT?"



"도시가 떠오르고 있어. 서두르는 게 좋을걸. 누가 진짜 우리 중 하나일지 한번 보겠어." - vince staples.


새로운 나날들이 계속해서 빠르게 도시에 떠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진짜배기라고 제법 말해왔지만 그럼에도 살아오면서 내가 가짜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한 번씩 있었다. 수많은 슬픔과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의 삶이 흐릿해지고 있다고 느낄 때, 타인과 비교하며 내 삶이 그다지 정석적인 루트를 밟고 있다 생각되지 않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변해서 떠나갈 때, 나는 진짜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짜배기"라는 단어를 떠올렸고 스스로를 진짜라 인정하려고 했다. 버티려 했다. 진짜 상실을 겪어왔고, 진짜로 그랬다는 척 따위는 부리지 않으며, 나는 계속해서 진짜로 맞서왔다는 것. 마음이 시키는 진짜의 것을 해왔다는 것. 그 사실들이 근거가 되어주었다.


흔들릴 때마다 회상에 잠기는 건 그래서였다. 과거에는 분명한 사실들이 있으니까. 그것들은 내가 진짜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단서였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정신을 갖고 있었다 등등. 그리고 그것에는 시작점이나 뿌리 같은 게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해변 동네 출신"이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다대포 근처의 해변 동네인 낫개 출신으로, 두 살부터 아홉 살까지를 그곳에서 보낸 나는 해변 동네의 감수성과 정신이란 것을 삶의 바탕으로 했다. 물론 그건 내가 나름 이름 붙인 것들이다.


낫개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나는 정말이지 거침없이 쏘다녔고, 막힘없이 내달리며 성장했다. 바람을 쐬며 해변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매립지에서 축구를 하고, 해군 무기 매설 지역인 줄 모르고 들어가 친구들과 버려진 무기로 칼싸움을 하고, 놀이터에서 궂은 장난들을 치고, 넘어져도 일어나 달리고, 괜히 먼 길을 둘러 가고 싶어 처음 걷는 길을 택하고, 나름의 다툼을 하고 나름의 짝사랑을 하면서 유년기를 형성해갔다. 항상 바닷바람이 함께 했고 나는 바다를 보며 그 넓음과 깊이를 동경했다. 그 동경은 자연스럽게 내 삶에 베여 태도가 된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종종 내가 자유롭고 투박하면서도 때론 여유롭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바다에 같이 가고 싶어진다고, 바다를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고 했다. 나는 그 말들을 배경으로 두고 한 번씩 되뇌곤 했다.


'나는 역시 진짜 해변 동네 출신이야.'


그 생각이 왜 그토록 힘이 되던지. 나는 낫개를 떠올리며 그곳에서 형성된 감수성과 정신력을 단단히 했다. 그리고 만나온 사건들을 종종 뒤이어 떠올려 보곤 했다. 이사를 하고, 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무리를 만들고, 방황하고, 부모님과 싸우고, 소중한 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걸 보고, 술을 마시며 도시를 겪고, 군대를 가서 총을 쏘는 등 정말이지 시간이 나 흘렀고 많은 일이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하나 모두 인상 깊었고 나를 흔들어놓기 충분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걸지 몰랐다. 빈스 스테이플스는 "Are you with that?"이란 곡에서 말했다.


"나는 진짜 해변 동네 출신. 와서 내 파도에 올라 타봐."


그 곡은 빈스 스테이플스가 지금껏 달려온 삶을 회상하는 곡이었다. 몽글몽글한 비트가 동심을 자극하면서도, 빈스의 목소리는 어딘가로부터 쫓기고 있는 듯 떨고 랩의 속도도 빨랐는데, 그 긴장감이 비트와 상반된 느낌이라 어딘가 애달프게 들리는 신기한 곡이었다. 빈스도 켈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으로 해변 동네 출신이었다. 생각해보면, 빈스의 노래들은 전부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았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만든 노래는 청자에게 그 파도에 올라타는 경험을 선사한다.


해변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점 말고도 노래에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구절이 많았다. 나름의 힘든 일들을 겪어 왔고, 박차고 나아가려 하며, 가끔 지난 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함께 놀았던 이들의 죽음에 애달파하는 등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들을 때면 빈스와 내가 해변에 나란히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빈스는 지친 눈동자를 하고 있었고, 소매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린 진짜 해변 동네 출신이잖아.


노래가 끝나면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각자의 거리로 다시 나섰다. 두 진짜 해변 동네 출신은 아무래도 여전히 밖에서 나돌고(Still outside), 숨지 않고(I don't hide), 사건들과 평생 싸울 셈(had to fight for my life)으로 보였다. 삶은 투쟁이고 그 투쟁 속에서는 잃는 게 많을 수밖에 없으며 그럴 때마다 넘어지게 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짜배기임을 증명하기 위해 두 진짜 해변 동네 출신은 계속해서 일어설 것이다.






* 가사 해석본은 힙합엘이(hiphople.com)에서 발췌했습니다.

이전 05화 독백 무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