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음악 자체에 관심이 없었달까.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던 아이돌 음악과 발라드는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 같아 와닿지 않았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인기 가요가 흐를 때도 나는 아무런 환호 없이 턱을 괸 채 묵묵하게 있을 뿐이었다. 가끔 "붉은 노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사랑 앓이" 등 몇몇 곡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직접 찾아 듣지는 않았고 어딘가에서 들릴 때 신나네 혹은 좋네 정도로 감상하고 흘려보내기만 했다. 나에게 음악이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리,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 정도였다.
왜 이런 가요들만 있을까. 하루는 길에서 들려오는 가요들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교실과 거리에서는 왜 다 신나거나 사랑 얘기인 노래들만 틀까. 다른 분위기와 주제의 음악들은 없나? 뭣 모르는 초등학생 때의 생각이라 반발심, 회의감보다는 순수한 궁금증에 가까웠다. 다른 음악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우리 집은 내가 인터넷을 하는 시간을 정해서 주는 편이었고 그 시간에는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음반 가게 역시 거의 다 사라진 시기였기에 나는 음반이란 게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나의 의문은 단지 의문인 채로 계속해서 머물렀다.
그 시절 나는 마냥 신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지내면서 다가오는 졸업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6학년은 분명 좋은 시절이긴 했다. 다정한 선생님이 만들어간 교실의 분위기, 함께 하며 어우러지던 학급 친구들, 함께하던 하굣길들. 그러나 추억이 쌓일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졸업하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고 멀어지겠지. 중학교에 적응은 잘 할 수 있으려나. 서로를 기억해주려나. 그러한 생각과 감정이 점차 물들어가던 내게 신나는 아이돌 음악이 와닿을 리 없었다. 연인과의 이별을 말하는 발라드 노래들도 나의 상황에 비하면 붕 뜬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흘러 졸업을 했고 중학교에는 다행히 나름 적응을 해나갔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그리움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다시 모이지 않을 친구들을 생각하느라 마음이 헛헛해졌다. 게다가 오랜만에 골목 멀리에서 초등학교 친구와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를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기까지 했다. 한동안 보지 않은 바람에 어색함이 감돌았던 것이었다. 먼저 아는 척을 하고 싶어도 혹시 무시당하진 않을까, 오지랖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 나는 결국 매일 밤 졸업 앨범을 펼치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랬고 그런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음악이라곤 초등학교 교가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들만으로는 그리움을 감당할 수 없었고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우울해진 사람이 되었다. 그날도 다름없이 우울하게 학원 봉고에 올랐다. 라디오에는 최신곡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나를 송두리째 쥐고 뒤흔든 음악을 만나게 되었다.
"깨어있지만 꿈속을 헤엄치는 기분"
"굳게 닫힌 마음의 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풀리지 않는 괴리감으로 나를 묶은 족쇄가 내 목을 조여 와"
그 음악이 처음 귀에 들렸을 때 나는 완벽히 선율에 휘감기듯 사로잡혔고 내 세계는 가사 한 줄 한 줄에 발칵 뒤집어 드러났다. 내가 앉아있던 곳은 학원 봉고가 아닌 백지가 되었고 백지 위로 나의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이 선율에 맞춰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모든 것이 귀로 다시 흘러들어와 심장을 더 빠르게 뛰도록 했다.
음악이 끝나자 나는 기사님께 이게 도대체 무슨 음악인지를 물었다. 기사님은 말했다. "외톨이 부른 애 신곡이네. 랩이지. 제목은 주변인이었던가." 나는 집으로 돌아가 곧바로 곡을 찾아 들었다.재생되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했다. 이런 음악이 있구나. 내가 듣고 싶었던 음악은 이런 거였구나.
시적이면서도 마디에 빽빽 들어찬 가사,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빠르기, 달빛을 자아내는 듯한 현악 사운드. 주변인이라는 제목은 물론, "난 여기에도 저기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라고 고백하는 가사까지. 익히 들려온 아이돌 음악이나 발라드와는 다른 결의 음악이었다. 소속감과 외로움, 대인관계와 이별, 그로 인한 삶의 허무함이라는 주제를 다룬 가요가 있었던가? 그 시절의 나에겐 그 음악이 처음이었다.
"달빛은 알아줄까 외로운 이 밤을. 별빛은 안아줄까 상처받은 마음을.
괴로움이 사무쳐서 노래를 부른다. 그리움에 파묻혀서 그대를 부른다."
그 후렴을 시작으로 나는 가사를 전부 외웠고 "주변인"은 내가 자의로 가사를 전부 외운 최초의 노래가 되었다. 랩을 빠르게 내뱉을 때마다 앙금들은 터져 바깥으로 떨어져 나갔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사이를 헤매고 졸업 앨범을 자주 들춰보던 내게 어느새 새겨졌던 우울감이,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따라 생긴 상처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해소되었다. 나는 좀 더 많은 해소가 필요했고 아웃사이더의 노래를 시작으로 점차 많은 음악을 듣기 시작했으며, 듣고 싶었던 음악을 들어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아이돌 음악, 발라드도 곧잘 좋아하게 되었다. mp3를 사고 이어폰을 난생 처음 꽂아본 적도 그 즈음이었다.
"주변인"으로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음악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여정을 떠올려 보면 나라는 주변인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을 거치며 온갖 사건과 감정을 겪었고 그때마다 여러 음악을 들어서 위로받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이해해 가며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려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아웃사이더의 후속 앨범 이름은 "주인공"이었다.) 시간이 흘러 제법 주인공이 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주변인"을 듣고 싶어지는 이유는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흐르는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주변인이라서가 아닐까. 어쩌면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 했으나 선명하게 표현할 재주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