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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Aug 30. 2022

내겐 너무 유별난 노동

리쌍 "일터(feat. Bizzy)"



의자에 앉아 생각해 본다. 글쓰기는 노동인가? 자본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이 질문은 현 사회에서 꽤 오래된 논쟁거리 중 하나이다.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가? 아닌가? 단지 취미에 가까운 행위인가? 이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내리려면 먼저 노동의 사전적 정의가 다음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  


 1. 몸을 움직여 일을 함

 2.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우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손을 움직이니 1의 조건은 충족한다. 아니, 손만 움직일까. 하나의 자세를 유지하다가 힘들면 자세를 바꾸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 방 안을 서성이기도 하니 글쓰기란 확실히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렇다면 2는 충족될까. 꽤 충족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글쓰기가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아니면 무엇일까. 그러나 우리는 "물자를 얻기 위하여" 이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게 될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는가? 그런 건 아니더라도 수익이 없다면 노동이라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개인의 답변들을 두고 뭐가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의미 파악과 가치관의 차이에 따른 답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어떨까. 어릴 때였다면 아마 노동과 글쓰기를 분리해서 답했을 것이다. "쓰는 게 좋아서 쓰는 거지. 나는 돈을 벌려고 쓰는 게 아니야." 하지만 지금은 노동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글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이 있었다.


더 잘, 더 많이 쓰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을 들였고, 힘에 부칠 땐 한계를 느끼곤 했으며 피로는 응당 따랐다. 막막하기도 해서 한숨이 쉬어지곤 했다. 어느덧 글에 대한 책임감이 붙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글쓰기가 취미 이상의 것이 되자 나는 프로 의식을 가지기로 하고 글쓰기를 노동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엄연한 하나의 노동. 물론 처음엔 노동이란 호칭이 좀 꺼려지긴 했다. 글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할 때만 해도 글이란 것의 낭만성과 예술성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동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 성질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글쓰기는 유별난 노동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그 느낌은 내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했다.


하지만 이 유별나다는 지칭은 또 하나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다른 노동에 비해 수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이 일로 돈을 벌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곤 한다. 그 마음은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었기에 전혀 부끄러워할 욕구가 아니었다. 그런데 글로 돈을 못 벌어서 가족에게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못 버는데 왜 그렇게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지, 다른 노동을 하고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지, 아주 피곤한 날 걸리적거리는 이 글쓰기는 정말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별난 노동이다...


간혹 주저할 때가 온다. 이 유별난 노동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두통을 앓아가며, 신경을 세워가며 문장 하나를 더 쓰려고 하는 스스로에게 진저리가 나서. 왜 이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회의가 들어서. 그럴 때면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지만 머지않아 다시 글을 쓰게 된다. 필연적인 것처럼 글쓰기와 나 사이에는 인력(引力)이 발생하고 있는 듯했다. 그 이유는 여럿 있다. 당장에 생각나는 건 치유의 필요성이다. 리쌍의 래퍼 개리는 가사 쓰기를 아픈 상처의 치유라고 "일터"란 노래에서 말한다. 이 비유를 따르면, 글을 쓸 때 괴로운 것도 쉽게 납득이 간다. 연고를 바를 때 상처 부위가 따끔한 것과 같은 원리인 셈이니까.


오늘 하루도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곳에서)

미친 듯 살아가고

(내 모든 것들을 위해서)

때론 지겨워져도

(때론 버려 버리고 싶어도)

이게 내 전부인 걸

(멈출 수 없으니 힘을 내)


리쌍의 "일터"를 방에 틀어놓는다면 그건 처지를 다독이기 위해서이다. 몸을 축 늘어지게 하는 신시사이저 소리, 작은 골방에서 삶을 쥐어짜듯 읊조리는 랩, 작가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가사. 그러나 백미는 브릿지 파트의 "랄랄랄랄라~"하는 한탄이다. 한번 들으면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절규와 낙관이 모두 섞여있는 듯하다. 벽지와 침대마저 물들이는 듯한 호소력 짙은 리듬은 신세를 한탄하듯 두 팔을 들어 올려 떼창하는 일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글을 쓴다. 글로도 표현 못한 압박감과 삶의 노곤함을 입에 가득 실어 랄랄라 노래를 부른다. 가사가 없어서 끝이 없을 것만 같다.


피 같은 땀을 쥐어짜며 방에서 오늘도 나는 익어간다. 쓰인 글들이 책상 위에서 식어가고 있다. 다음날 또 다른 일터로 출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로를 안고 계속해서 쓴 것이다. 혓바늘이 돋아서 괴롭다. 몸에는 멍이 든 것처럼 곳곳이 뻐근하다. 돈 한 푼 못 되지만 방이라는 일터에서 하는 노동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 노동은 마지막까지 내 전부일 것이기에. 의자에서 일어나 한숨을 길게 쉰다. 오늘은 이만 끝내지만 나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쓰리다. (아, 그런데 이 쓰리다란 말이 중의적으로 들린다!) 랄랄랄랄라~ 랄랄랄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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