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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훈 Sep 23. 2022

가는 중이야 아직 길 위에서

장재인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적갈색 트랙을 달리고 있던 두 발이 속도를 점점 늦추며 막바지에는 트랙을 툭 하고 밟 그 자리에 멈춰섰다. 먼지가 튀어 올랐다면 공원의 가로등 불빛에 비쳤을지도 모르겠다. 옷은 땀에 젖었고 나는 축축함과 뜨거움 그리고 밤바람 속에 있었다. 30여 분간의 달리기를 하고 쉴 차례였다. 이온 음료를 사서 벤치에서 마셨고 눈을 찌르는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손등 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한 손에 쥔 휴대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릴 때 틀어놓은 강렬한 비트의 음악이었다. 쉴 때는 다른 음악을 틀어야지. 무엇을 틀까 고민하는데 문득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뭔가 특별한 바람이었던 걸까. 한때의 기억이 그 바람을 타고 불어오듯 떠올라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하나의 곡을 찾게 되었다. 그 시절 듣던 노래, 오래되어 가사와 멜로디가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위기만큼은 확실히 기억나는 곡. 제목이 뭐더라. 그.. 그... 맞다. 그것. 검색해서 틀자마자 예상한 분위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 밤~ 네게 가는 길~"


여전하구나. 가슴속 어딘가를 간질이는 특유의 목소리로 장재인이 부르는 곡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였다. 중학생 때 종종 들었지. 학원을 마치고 밤길을 걸으며, 이어폰을 꽂은 채 자율학습을 하며 등등. 그때 나는 어디를 달리고 있는 셈이었을까. 벤치에 앉은 채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그들에게 공개했던 무수한 꿈들이, 함께 여행을 가자는 계획들이, 되고 싶던 모습들이 밤하늘에 두 눈으로 그려졌다. 넘실거리는 기타 소리가 눈을 자극한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나. 멈추지 않고 땀이 목뒤를 타고 흘러내렸다.


계속해서 가고 있다는 느낌이 여전히 들었다. 그런데 내가 진정으로 가고 싶은 곳은 장소가 아니라 특정 시간대의 누군가인 것 같았다. 꿈을 이야기하며 함께 놀았던 친구들의 미래로 가 나 예전에 말했던 모습대로 도착했다고 그들 앞에서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종종 내 글이 편지 같다고 느낀다. 그들은 글을 받아보며 내가 당시에 꿈꾸던 창작자의 삶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있는 걸 확인할 것이다.


"두 손에 품은 나의 마음을 너의 곁으로

 너에게로

 다른 누구도 아닌 네게."


내겐 한 명 한 명 모두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이었다. 뚜렷한 개성과 저마다 다른 관계로 엮인 친구들. 그래서 나는 "너"라는 말에 모두를 대입할 수 있었다. 장재인이 "너"라고 부르며 만든 사랑 노래는 내게 그런 식으로 재해석되어 다가왔다.


벤치에서 일어나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손에 꽉 쥔 휴대폰으로 한 번 더 노래를 재생했다. 골목길 가로등 아래로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가 불었다. 10년을 훌쩍 넘어 다시 듣는 이 노래에는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녹음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중학생 시절 달릴 때 맞던 바람, 운동장에서의 왁자지껄함, 학원으로 혼자 걷던 골목길에서의 고립감, 모든 것이 녹음되어 지금 흘러나오는 듯했다. 그 모든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길 위에 있었다. 이 밤~ 나는 가는 중이야~ 아직 길 위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 너에게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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