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화요비 "Baby Gone Baby Gone"

by 시훈


현재의 본교 관계자가 아니라면 건물 출입은 할 수 없었다. 다만 운동장은 주민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저녁의 땅거미가 지는 운동장에 나는 서 있었다.


운동장은 내게 특별한 장소였다. 교실에서의 추억 못지않게 많은 일이 있었던 곳이었으니까. 체육 시간은 물론 쉬는 시간이나 등하교 시간이면 친구들과 그곳을 누볐다. 피구나 축구를 하기도 했고,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칠 때면 우르르 걸어나가며 캄캄한 밤 속 켜져 있던 교실 불빛을 돌아보고는 했다.


다시는 갈 수 없는 시절임을 이제 나는 인정하고 그 씁쓸하면서도 추억으로 충만한 기분을 적당히 음미하며 운동장을 걸을 수 있었지만 한때는 너무 운동장을 찾아가서 문제이기도 했다. 증상을 처음 발견한 건 중학생 때였다. 잠긴 학교 건물과 달리 마치 여기까지는 발을 들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존재하는 운동장에 나는 자주 찾아갔다. 초등학생 시절의 잔상을 운동장에 복구시키고 서성이면서 기억에 안겨있는 기분을 만끽했는데 그 빈도가 얼마나 잦았는지 당시의 어린 나 자신도 심각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러다간 나 혼자 계속 이 시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되겠다 싶어서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라고 다짐해도 나는 분리 불안인 강아지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운동장으로 돌아왔다. 그때 내 손에 들려 있었던 소니 워크맨에서는 화요비의 "Baby Gone Baby Gone"이 흘러나왔다.


추억 따윈 찾지 마 기억하려 애쓰지 마
결국 우린 Baby Gone ma Baby Gone


지난날의 미련을 외면해 보려는 듯 노래하는 화요비의 목소리와 이에 반해 현재 심정 묘사를 늘어놓는 아웃사이더의 랩은 마치 대립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 같아서 나는 운동장 위에서 이 노래가 딱 지금의 나 같다고 여기곤 했다.


오랜만에 운동장에서 "Baby Gone Baby Gone"을 들으니 당시 랩 파트를 따라 중얼거리던 내가 떠올랐다. 심정을 알아주는 듯했던 가사를 운동장 걸으면서 곱씹었던 나.


산산조각 난 우리 사랑은
마치 초점을 잃어버린 눈동자
홀연히 떠나버린 운동장


운동장이라는 발음을 하던 어린 내 눈앞으로는 텅 빈 운동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친구들이 없는 장소, 모두가 떠나야 했던 장소. 그래도 열려 있는 장소. '나는 운동장 같구나.' 스스로를 다른 무언가에 비유해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비록 랩을 따라 한 것이었지만 필사하며 작문을 연습하는 것과 같았다.


걷다가 스탠드에 앉아서 운동장을 바라보는 나는 이제 훌쩍 어른이 되어 있었다. "Baby Gone Baby Gone"은 손에 쥔 스마트폰에서 재생되었다. 여전히 많은 것을 떠나보냈고 이를 인정하고 있던 와중, 오랜만에 찾은 운동장. 과거와 현재 경계에 놓인 구역 같은 장소. 현재를 사느라 이제는 가끔 올 뿐이지만 내 문학의 기반은 운동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교문 밖 대도시를 보기 앞서 운동장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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