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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0. 2018

<패터슨> 리뷰

시인, 똑같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 사람


<패터슨>
(Paterson)
★★★★☆


 2013년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짐 자무쉬 감독의 신작, <패터슨>입니다. 본토엔 2016년 말, 국내엔 1년이 늦은 2017년 말 개봉되었구요. <스타 워즈> 시리즈의 카일로 렌부터 <인사이드 르윈> 등지(?)에서의 연기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가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장르와 흥행력을 불문하고 1년에 세 편 이상의 출연작을 유지하고 있는 배우인지라 신작마다 새삼스럽기도 합니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의 이름은 패터슨입니다.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을 먹은 뒤 애완견 산책 겸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죠.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는 비밀 노트는 조금 심심해 보이는 그의 일상을 그만의 활력으로채우는 비법입니다. 그 노트 안엔 틈틈이 한 줄씩 써내려간,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그의 시가 한 장 한 장 들어 있습니다.

 '시적이다'. 사전을 찾아 보니 시의 정취를 가진, 또는 그런 것을 수식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엔 마법과도 같은 힘이 있습니다. 조화롭지 않은 것을 조화롭게, 어긋난 것을 어긋나지 않게 만듭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만들고, 다른 것을 같게 만듭니다. 평범한 것에 난데없는 긍정적 속성을 부여합니다. 좀 더 로맨틱하게, 좀 더 아름답게, 좀 더 부드럽게 합니다. <패터슨>이 지니고 있는 모든 재료들은 시적입니다.

 패터슨의 일주일은 얼핏 같은 하루의 반복인 것만 같습니다. 손목시계와 함께하는 여섯 시 기상부터 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밤까지, 매일 같은 노선을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버스 기사에겐 더욱 따분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패터슨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같은 단어에 무한한 색과 깊이를 부여합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읽는 기분에 따라, 읽는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울림을 냅니다. 패터슨은 결코 똑같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습니다.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커튼의 무늬를 직접 그립니다. 흰 바탕에 검은 동그라미를 채워넣습니다. 크기도 얼추 비슷해 보입니다. 커튼을 본 패터슨은 '동그라미가 다 다르게 생겨서 좋다'고 말합니다. 같은 노선을 돌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합니다. 같은 산책로에서도 다른 사람을 만납니다. 같은 바에 앉아 같은 술을 마시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나눕니다. 시인이라는 자리가 필요로 하는 자질은 생각보다 원대하지 않습니다.

 기승전결도, 선악의 대립도 없습니다. 이야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종종 소설의 한 문단보다 짧은 시가 하나의 전집보다 다채로운 감정을 담아내기도 합니다. 하나의 구절이 누군가의 삶을 옮기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영화는 시가 되어, 하나의 구절이 되어 시의 힘을 뿜어냅니다. 일요일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한 시는 앞으로도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채 자신을 알아봐 줄 눈을 기다립니다.


 

 어쩌면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패터슨>의 낯선 사람들은 꽤나 순수하고 친밀해 보입니다. 보는 이에게 일종의 가르침을 주러 나타난 것만 같은 신비로움마저 지니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착한' 유형의 사람들만 만나다 보면 패터슨처럼 살기는 어렵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작용은 다른 작용의 반작용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순수할 수 있는 작용이 바로 패터슨이었을지 모릅니다. 보는 눈을 달리하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하니, 삐딱함은 한 번쯤 거두어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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