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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6. 2018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리뷰

다다익선과 과유불급의 줄다리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Avengers: Infinity War)
★★★☆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할리우드와 영화 역사의 판도를 바꾼 마블 스튜디오의 최대 야심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마침내 개봉을 맞이했습니다. 마블 영화로는 유례없는 전 세계 동시 개봉은 물론, 개봉 전부터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암표가 기승을 부리는 등 유독 마블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에서도 전조는 심상치 않았습니다. 품고 있는 스케일과 팬들의 기대는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없겠죠.

 관람은 용산 아이맥스의 조조 회차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른 시각에도 600명이 넘는 관객들은 <인피니티 워>를 보기 위해 용산 CGV를 찾았고, 아이맥스 포스터 증정 이벤트 덕에 상영 전과 후 모두 긴 대기줄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인 J20번이었구요. 잔인하게도 아침 6시에 열린 예매 전쟁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운좋게도 취소표를 주웠습니다.              



 이번 <인피니티 워>는 쿠키와 떡밥을 한 트럭으로 끌어모았던 타노스와 인피니티 스톤을 극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전 우주 인구의 절반을 몰살하는 것이 목적인 매드 타이탄 타노스가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자신의 과업을 달성하려 하고, 어벤져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블랙 팬서와 와칸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마법사들 등 우주 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인물들이 그에 맞서죠. 

 <인피니티 워>는 그 존재만으로 엄청난 의의를 안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인 출연료의 자릿수보다 많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영웅들이죠. 캡틴 아메리카부터 닥터 스트레인지에 이르기까지, 한 명 한 명의 솔로 영화를 기대해도 좋을 인물들이 하나의 영화에서 하나의 이야기에 엮입니다. 스타로드와 토니, 토르와 로켓, 닥터 스트레인지와 스파이더맨 등 하나의 프레임에 잡힌 광경만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조합이 끝없이 등장하죠.



 전 우주의 운명을 건 대결에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액션도 빠질 수 없습니다. 분자 단위로 분해와 결합을 반복하는 아이언 맨 수트, 아이언 스파이더로 진화한 스파이더맨 수트, 인피니티 스톤의 힘을 얻은 타노스,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 블랙 팬서와 캡틴 아메리카 일당(?)의 맨몸 결투 등 각 영웅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각자의 스타일마저도 한데 뒤섞입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는 수식이 아깝지 않습니다.

 <인피니티 워>는 팬들을 위한 대단원이자 축제입니다. 만화책에서 튀어나온 영웅들이 뒤엉키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는 날이 마침내 도래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자질을 증명하고 <시빌 워>에 이어 <인피니티 워>까지 맡게 된 루소 형제는 그 의의를 영화의 시작이자 끝으로 정의한 듯 합니다. 여느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상미도 영상미지만, 놀랍게도 각본의 짜임새가 그를 넘어서기에 이릅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스포일러라는 말은 마케팅용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제발 스포일러를 하지 말아 달라며 감독이 나서 캠페인을 시작하고 모든 배우들에게 가짜 내용이 섞인 다른 대본을 주었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관객들의 예상을 깨부수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듯한 취향은 <인피니티 워>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습니다. 대담함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프로젝트의 때깔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사실 <인피니티 워>는 예상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했습니다. 제아무리 <어벤져스>와 <시빌 워>를 통해 여러 명의 영웅들을 균형 있게 다루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하나, <인피니티 워>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과감한 생략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지만, 진입 장벽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여기의 진입 장벽이란 일반 영화 팬들 중에서도 마블 영화 팬들에 편중되어 있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죠.

 노력한 티가 물씬 납니다. 개성은 살리고 분량은 줄이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출연진을 감당하기엔 부족했습니다. 모두를 챙기려다 보니 그 누구도 챙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습니다. 개별 영화의 조연들은 일방적으로 소비되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고, 주연들마저도 <인피니티 워>가 초점을 맞추는 일부 캐릭터들에 밀려 체스 말 3 정도의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대차게 출발한 타노스의 부하 블랙 오더는 슬프게도 용두사미의 전형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누군가의 죽음마저도 예상을 뒤엎은 전개보다는 큰 그림의 일부로 느껴지기에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합니다.



 개중에서도 가장 깊은 서사와 분량을 챙기는 캐릭터는 타노스입니다. 단순히 우주를 지배하고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나섰던 지난 악당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힘의 크기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피니티 워>라는 대장정의 대단원에서 이를 부랴부랴 펼쳐놓기 시작하려니 힘에 부칩니다. <인피니티 워>는 모든 것을 깔아둔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부딪치는 무대가 되어야 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부터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까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약간의 소홀함도 곧바로 눈에 밟힙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중심 플롯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 자신의 여정을 완성해 나가는 타노스를 둘러싸고, 우리의 수많은 영웅들은 역할을 나누어 그를 보조하는 데 그칩니다. 타노스는 어느 모로 보나 지나치게 절대적입니다. 땅에 닿기만 해도 행성이 날아간다던 스톤의 설정에서 힘을 조금 빼 봤자 시공간을 다스리고 손짓 한 번에 모두가 나가떨어지는 그림은 어쩔 수 없습니다. 등장과 동시에 더 이상의 긴장도 없습니다.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치기에 자잘한 구멍들은 대강 영화적 허용의 힘을 빌립니다. 현실적으로 연결이 불가능한 지점이 있다면 그걸 능력으로 갖고 있는 캐릭터를 뚝딱 만들어내면 그만입니다. 대의를 위하고 팬들을 위하다 보니 꼼꼼함과 대중성은 (상대적으로) 모자랍니다. 주먹으로 운석을 떨어뜨리는 등 능력의 초현실성도 극대화되다 보니 슈퍼히어로 영화라는 향기도 옅어진 것만 같습니다. 심지어 타노스의 논리엔 일말의 설득력까지 내재되어 있어 선과 악의 이분법도 아주 뚜렷하지 않고, 이 거대한 대결의 정당성을 흔드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최선의 결과물입니다. <인피니티 워>가 가지고 있었던 재료는 '많다'라는 단순한 단어에 가둘 수 없습니다. 시리즈의 단위를 <어벤져스>에서 끊을 것이 아니라, 타노스와의 대결만으로 3부작을 만들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인피니티 워>는 관객, 감독, 배우, 제작사, 시간 등 하나의 영화를 가로지르는 가지들이 가까스로 형성한, 모두가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교집합을 기어이 찾아내 기적적으로 자신의 깃발을 꽂았습니다. 이 쪽의 만족을 위해서는 다른 쪽의 불만족을 감수해야 하는 균형점입니다. 결말부의 여운은 장르의 새로운 장을 써내려간 각본과 연출의 승리입니다.

+ 닥터 스트레인지의 'end game'은 자막에 나온 대로 '가망이 없다'가 아니라 '마지막 단계다'라고 번역되어야 했습니다. 표현 하나를 오역하는 바람에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는 물론 4편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거대한 줄기를 완전히 오해하게 만들어 버렸죠. '아이리스(iris)', 
'에너지 소스(energy source)', '페이싱 능력(phasing)' 등 간단한 단어들을 고유명사 취급하는 평소 버릇이 나오더니, 결국 꽤 큰일을 저지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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