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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9.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리뷰

햇살 아래 익어가는 살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 Me By Your Name)

★★★★☆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출발한 관심으로 매니아층마저 결성하는 데(?) 성공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 오던 중 <비거 스플래쉬>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이죠. <소셜 네트워크>의 아미 해머, <레이디 버드>의 티모시 살라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마이클 스털버그 등 아카데미에 최적화된(...) 조합과 소재로 이번 시상식에서는 각색상을 따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1983년 이탈리아,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 오후, 스물 넷의 미국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집을 찾아오죠.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에 외지인이라는 신비로움이 더해진 올리버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만, 그를 향한 엘리오의 호기심은 조금 특별합니다. 둘은 조그마한 심부름부터 수영까지 함께하며 조금씩 가까워지고, 서서히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하기 시작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포근한 날씨와 여유로운 공기,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이탈리아의 마을을 무대로 두 사람의 감정선을 교차시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손가락질하지 않을 듯한 가능성은 수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죠. 본래 이름이란 누군가의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으로 향하는 관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하나의 단어는 영혼과 그 영혼이 속한 세계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올리버는 아침식사 자리에서 달걀을 먹을 때에도 자신의 자제력을 의심합니다. 한 개를 더 먹었다간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정중히 거절합니다. 열병과도 같은 감정은 돌이킬 수 없는 가속도로 질주합니다. 시작하는 순간 자기 자신도 멈출 수 없습니다. 한 번 내리쬐기로 결심한 햇살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껏 어루만졌던 과실들이 걸었던 길은 햇살의 의지와 무관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익어가는 모습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학술명으로 따지면 살구는 자두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살구는 자두보다 일찍 익습니다. 때문에 '철 이른 과일'이라는 어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살구는 그 어떤 과일보다 먼저 햇살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햇살에겐 살구가 처음 보는 과일이 아니겠지만, 살구에겐 유일한 햇살입니다. 열병처럼 옮겨붙은 손길은 살구를 키워내고 자라게 합니다. 하늘에 매달린 해와 땅에 붙은 살구를 연결하는 객체는 수영장부터 폭포까지의 물입니다. 


 햇살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살구는 항상 같은 자리에 있지만, 해는 밤으로 향해야 합니다. 성장이 영원할 수도 없습니다. 과한 성장은 살구를 나무에서 떨어뜨릴지 모릅니다. 살구에겐 잠깐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시간이 그를 완전히 채웠습니다. 엘리오에게 남은 것은 그리움뿐이지만, 그렇게 남들보다 조금 일찍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떤 손길에도 위축되지 않을 태를 갖추었습니다. 물론 한 켠에 오래도록 남을 그 때의 기억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기억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생김새는 물론 냄새, 소리, 촉감까지도 특정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촉매가 되기도 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엘리오의 기억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그 때 그 시절의 모든 재료들은 결국 올리버라는 중심으로 소용돌이쳐 모입니다. 이제는 영화의 재료가 두 사람의 아련한 그림자를 이끌어낼 차례입니다. 이탈리아의 따뜻함과 수프얀 스티븐스의 음악이 엘리오와 올리버의 나날을 엮을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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