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고야 만 눈물 한 방울
평소라면 쓱 지나쳤을 영화들에 어느 날 갑자기 발길이 이끌려 관람까지 이르게 되는 날이 있죠. 2014년에 <랄프 스테드먼 스토리: 이상한 나라의 친구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아무 계획 없이 관람한 적도 있었더랬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의외로(?) 전국 관객수 4천 명 선까지 올라갔던 영화였죠. 이번 <행복한 라짜로>도 극장에 들어서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구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 라짜로는 이웃들과 함께 마을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입니다. 다소 모자란 것 같아도 시키는 일은 열심히 하고, 매사에 착한 그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그러던 어느 날 외지 청년 탄크레디가 요양을 위해 마을을 찾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그는 인비올라타를 벗어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개봉은 무려 두 달 전인 6월 20일이었지만, 잔잔한 입소문 덕인지 어느새 아는 사람은 아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7월 초에는 탄크레디 역의 루카 치코바니가 내한하여 GV 스케줄까지 소화하고 갔었구요.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아서는 국내 수입되는 대부분의 이탈리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따신 햇살 아래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룰 것만 같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예상과는 꽤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단어엔 두 가지 속성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속성과 부정적인 속성이죠. 같은 말도 하기에 따라, 혹은 듣기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져갑니다. '삐딱하게 들으면', '고깝게 들으면'이라는 말이 앞장서면 그 어떤 긍정적인 단어도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보통 긍정적인 것이 부정적인 것이 되기는 쉽지만, 그 반대는 의외로 어렵습니다.
착하다는, 선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성이 올곧고 바르다는 의미일 것만 같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고 아둔하다는 말이 뒤따르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다르다는 말도 있습니다. <행복한 라짜로>의 라짜로는 이 용례의 화신입니다. 시공간을 막론, '지금'이라는 세상에 던져진 절대선의 모습을 시리도록 차갑고 담담하게 담아냅니다.
인비올라타의 사람들은 라짜로를 착한 동네 바보쯤으로 생각합니다. 언제 무얼 시켜도 싫은 내색도 비치지 않으며 척척 해냅니다. 그러고는 더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습니다. 진심이 흘러나오는 맑은 눈동자를 보고만 있어도 절로 고해성사를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라짜로는 그냥 그런 존재입니다. 때묻지 않음과 순수함의 결정체입니다.
영화는 그런 라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관객들의 시선을 일치시킵니다. 인류 공동체와 문명의 때가 조금이라도 묻은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기시킵니다. 어디가 조금 모자란 아이인가 보다. 하지만 착하기는 정말 착한 아이인가 보다.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확실해졌다고 판단한 순간, 영화는 새로운 장을 꺼내들어 진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름다운만큼 흉측합니다. 따뜻한만큼 차갑습니다. 행복한만큼 불행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앞서 발견했던 라짜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릅니다. 세상은 어느새 그런 곳이 되었습니다. 선이 선으로 남아있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 영화는 누구의 잘못을 묻지 않습니다. 이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 가슴 속 선의 불씨에 자그마한 바람이 불기 때문입니다.
라짜로 역의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배우 경험은커녕 취미 개념의 연기조차 해 본 적이 없는 경제학도였습니다. 그러나 제작진이 여러 학교들을 돌며 캐스팅 콜을 내걸던 중 감독의 눈에 띄어 설득 끝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하죠. 연기 경험조차 따지지 않고 주연배우 자리를 준 사실이 얼핏 대단해 보이지만, 화면에 비친 라짜로의 눈은 모든 해답을 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