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의 사랑
<해피엔드>, <은교>의 정지우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2017년 말 개봉되었던 <침묵> 이후 2년이 조금 안 걸렸네요. 드라마 시리즈 <도깨비>에서 아주 잠깐 호흡을 맞추었던 김고은과 정해인 주연작, <유열의 음악앨범>이죠. 김국희, 박해준, 정유진도 이름을 올렸구요. 흔하지 않은 제목 탓인지, 꽤 최근까지 소식을 주기적으로 들으면서도 영화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더랬습니다.
엄마가 남겨준 빵집에서 언니와 함께 일하는 미수. 어느 날 말주변도 없고 숨기는 것도 많은 또래 청년 현우가 찾아옵니다. 둘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도통 드러나지 않았던 현우의 과거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모든 것이 바뀌죠. 뜻하지 않은 사건들로 떨어지며 수 년을 만나지 못하길 반복하지만,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도 둘의 인생 곡선은 접점을 찾아 갑니다.
<나의 소녀시대>, <너의 결혼식>, <건축학개론> 등, 떠오르는 제목들이 몇 개 있습니다. 운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을 일대기 형식으로 따라갑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오가는 연애 감정선이 기본이 되고, 관객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 드러나며 벌어지는 일과 관객들도 모르던 사실이 밝혀지며 벌어지는 일로 강약을 조절합니다.
해야 할 것은 다 하지만 그 이상은 없습니다. 현우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시작과 동시에 드러납니다. 특수요원 신분으로 국제적인 도망자쯤이 아닌 이상, 고등학생 신분으로 가질 수 있는 사연은 크게 다양하지 않습니다. 현우와 미수가 가까워질수록 영화가 무언가를 터뜨리려는 기색 정도는 누구든 예측할 수 있고, 두어 번 반복되다 보면 물리기 마련이죠.
더 큰 단점은 둘을 제외한 곳에 있습니다. 은자, 종우, 태성 등 미수와 현우의 주변인들은 물론, 이들을 둘러싼 세상까지도 오로지 두 주인공의 만남을 위한 재료로 희생됩니다. 3년씩이나 건너뛰기를 주저하지 않지만, 마치 그 사라진 3년의 세상이 나서서 둘이 다시 만날 무대를 꾸며놓는 것만 같습니다. 각자의 삶과는 별개로, 둘이 만남을 이어가기에는 참 편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극중 등장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유열의 음악앨범'을 영화 제목으로 써먹은 결정도 의아합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내레이션과 각본에서 라디오를 써먹는 모양새는 오히려 어떻게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던진 또 다른 무리수에 가깝습니다. 제과점과 수제비집, 펩시 티셔츠나 만화방 등 여타의 수많은 제목 경쟁자들을 이긴 이유를 납득하기는 어렵죠.
결국 <유열의 음악앨범>은 비현실적인 세상에서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현실 연애니 현실 커플이니 하는 공감의 여지는 동종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한참 부족하죠. 그렇다고 영화만이 그려낼 수 있는 특별함이나 애틋함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두 배우의 팬이라면 압도적인 분량과 다양한 스타일에 얼추 만족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의 눈에 도드라지는 구석은 많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