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방금 타짜 되는 상상함
흥행 성적도 흥행 성적이지만, 대중의 입에 가장 흔하게 오르내리는 명대사를 배출한 영화를 꼽자면 아마 <타짜>를 따라오기 어려울 겁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제는 소리를 죽이고 켜 놓아도 모든 대사가 들릴 지경이라고 하죠. 그 정도의 명성을 거둔 데다 마침 원작도 4편까지 나와 있으니, 최소 3부작은 보장된 셈이었습니다. 이번 3편 <원 아이드 잭>은 2014년 <신의 손> 이후 5년만에 돌아왔구요.
전설적인 타짜 짝귀의 아들이자 고시생, 그리고 동네 포커판의 실력자인 도일출. 포커판에서 우연히 알게 된 마돈나의 묘한 매력에 빠져든 일출은 너무나도 위험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죠. 머지않아 벼랑 끝에 몰린 그의 앞에 정체불명의 타짜이자 짝귀와 인연이 있다는 애꾸가 나타나고, 그렇게 일출은 애꾸의 설계를 따라 전국적인 판에 베팅을 시작합니다.
1편과 2편에서 선보였듯, <타짜>는 기본적으로 케이퍼 무비(도둑질 영화) 장르에 가깝습니다. 특정한 목표와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이 설계되고, 여러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유형의 상호작용이 유발되죠. 거기에 도박이라는 소재 특유의 쫄깃함(?)과 패와 수를 읽는 특별한 두뇌 싸움이 펼쳐지며 <타짜> 시리즈만이 갖는 매력 포인트가 발생하구요.
이번 <원 아이드 잭> 역시 그 전철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심지어 원작의 내용을 대폭 뜯어고쳐 주인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새로 만들어지거나 이름만 간신히 빌린 수준이죠. 흥행과 오락성에 오롯이 집중하기 위한, 판을 좀 더 예쁘게 설계하기 위한 설계인 셈입니다. 잠재력은 가득하지만 감정에 휘둘리는 주인공을 필두로 개그, 돈이 최고, 도사, 어르신 등 성공 공식의 재료들이 빠지지 않고 알뜰히 배분됩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의 중심이 없습니다. 도일출과 애꾸, 나머지 팀원들과 판의 목표인 물영감을 소개하는 초중반부까지는 나름대로 매끄럽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인공들의 과거사가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후반부로 넘어가며 절반이 넘는 캐릭터들이 한순간에 설 자리를 잃죠. 주인공인 도일출을 제외하면 물영감이나 애꾸마저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연관성이 있음을 어떻게든 증명하기 위한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소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섯다와 고스톱을 거쳐 넘어온 포커는 기본적인 대중성과 오락적으로 연출할 잠재력 모두 떨어집니다. 어떤 패가 어떻게 나와도 이게 얼마나 나오기 어려운 패인지조차 알 수 없는 마당에 감흥은 생길 리 만무하고, 타짜들의 화려한 손기술은 유치한 말싸움으로 대체되죠. 한두 바퀴 돌다가 눈치 몇 번 보고 올인하더니 치고받는 광경만이 되풀이됩니다.
고니와 함대길을 잇는 도일출, 아귀와 장동식을 잇는 마귀 모두 개성 면에서나 능력 면에서나 시리즈 최하를 기록합니다. 철부지나 애들은 허락하지 않는, 뒷세계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1편의 아우라는 2편을 거쳐 3편에서 완전히 무너지죠. 그 때 그 시절 으른들의 모습을 동경해 최대한 비슷한 조건을 꾸려 내는 흉내에 그칩니다.
어수룩함으로 일관하다가 누가 자존심만 건드리면 급발진하는 박정민의 연기는 <변산>의 들쑥날쑥함을 재현합니다. 이를 포함, 대부분의 캐릭터는 이미 등장하는 순간부터 캐릭터의 뻔한 개성이 배우를 뒤덮고 말죠. 누군가 한 마디를 던지면 나머지가 딱 그 캐릭터 입에서 나올 법한 대사 한 마디씩을 덧붙이는 연출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인물은 다른 인물들에, 상황은 다른 상황들에 묻혀 어떤 구성 요소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어처구니없는 판돈으로 분위기만 쓸데없이 살벌한 판이 지나간 뒤에도 도일출이 그 대단하다는 '원 아이드 잭'은커녕 타짜라고나 불릴 수 있을지 의심스럽죠. 이 흐름이라면 다음 번엔 술게임 잘 하는 대학생이나 컴퓨터게임 잘 하는 고등학생이 타짜라며 주인공으로 나서도 이상하지 않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