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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04. 2019

<제미니 맨> 리뷰

새롭게 낡은


<제미니 맨>

(Gemini Man)

★★


 2016년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 이후 3년만에 돌아온 이안 감독의 신작, <제미니 맨>입니다. 전작이 흥행과 평가 모두 부진했고, 국내 정식 개봉도 되지 않은 터라 사실상 <라이프 오브 파이> 이후 처음 보는 것 같네요. 최신작 <알라딘>으로 커리어 최고 흥행 기록을 찍은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고,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 클라이브 오웬, 베네딕트 웡 등이 출연합니다.



 극비 기관에서 추진했던 프로그램의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 베테랑 요원 헨리. 새로운 동료 대니와 전성기 시절을 함께한 배런의 도움으로 몸을 숨기지만, 그의 뒤를 쫓는 요원에게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낍니다. 바로 국가가 최고 중의 최고였던 헨리의 DNA를 이용해 만든 '제미니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헨리와 동료들은 모든 것의 배후를 알아내고 제미니 프로젝트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로 3D 칭찬을 들은 이안은 또 한 번 영화 상영 기술의 혁신을 꿈꿨습니다. 애석하게도 초당 프레임 수를 두 배를 늘리는 업적(?)은 피터 잭슨의 <호빗> 시리즈가 대대적으로 가져갔죠. 다소 미끄러운 화면 탓에 어색하다는 이야기도 많았고, 애초에 특수한 영사기를 들여놓아야 했기에 수지타산을 생각한 극장들의 반응도 딱히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숫자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이안은 <제미니 맨>을 초당 120프레임으로, 3D는 4K 화질로 촬영하는 모험을 감행했습니다. 덕분에 이번 영화는 '120fps HFR 3D+'라는, 척 봐도 휘황찬란한 수식을 가져갔죠. 아직 실험 단계에 불과한 시도인지라, 국내에서도 롯데시네마 일부 지점을 제외하면 지원하는 상영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별점이나 리뷰 내용을 보시다시피 홍보는 아닙니다).


 이렇듯 때깔은 최-신 기술 덕에 반짝반짝 빛나지만, 애석하게도 내용물은 마치 균형이라도 맞추려는 듯 20세기로 회귀합니다. SF 장르에서 복제인간이나 인조인간은 이제는 단골 손님 수준을 넘어섰지만, <제미니 맨>은 이 모든 것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나 먹힐 법한 기초적인 접근으로 러닝타임을 꽉꽉 채워넣고 있죠. 본인이 다루는 최첨단의 무언가를 원시인에게 설명하듯 놀랍고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똑같이 생긴 서로를 처음 만난 헨리와 주니어의 모습이 단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모가 같은 것도 모자라 눈 앞에 닥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마저 똑같다면, 그리고 발달한 기술 덕에 무엇이든 가능한 비밀 기관이 있다면 일단 둘이 같은 존재라는 것은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헨리와 주니어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놀라운 사실로, 그것도 상당한 시간을 들여 받아들이죠. 왜 이제서야, 왜 이만큼이나 놀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뒤 행보는 더욱 실망스럽습니다. 설정의 무한한 잠재력을 아둔한 각본으로 찍어누르는, 실패한 SF 영화들의 단점을 고스란히 답습하죠. 개조가 가능한 인간 복제 기술을 중심에 두면서도 고작 한 손이면 다 셀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석에서 복작대는 꼴입니다. SF의 갑옷을 입어야 할 액션은 최근의 여느 TV용 첩보 시리즈만도 못한 수준이고, 회심의 높은 초당 프레임 수는 이질감만 더하죠.



 잘 만든 SF 영화들은 화려한 기술과 볼거리를 토대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메시지를 담아내지만, <제미니 맨>은 양쪽 모두에 실패합니다. 때깔과 내실 모두 족히 20년은 묵혀 두었다가 뒤늦게 발굴되어 기적적으로 상영되는 영화에 가깝습니다. 새로운 것도, 새삼스러운 것도 없습니다. 이안씩이나 되는 감독이 수 년을 기다려 내놓은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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