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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1. 2019

<날씨의 아이> 리뷰

눈부신 뒷걸음질


<날씨의 아이>

(天気の子)

★★☆


 <너의 이름은.>으로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전 세계 흥행 1위 자리를 수성하고, 국내에서도 역대 개봉된 일본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년만에 돌아왔습니다. 본토엔 지난 여름 개봉되었지만, 국내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수입사가 공식 입장문까지 발표하며 조심스레 선을 보인 <날씨의 아이>죠. 얼마 전 <봉오동 전투>에 출연하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눈도장을 찍은 다이고 코타로와 신예 모리 나나가 주인공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이상하게도 비가 그치지 않던 어느 여름날, 가출 소년 호다카는 수상한 잡지사에 취직해 도시 전설들을 쫓던 중 비밀스러운 소녀 히나를 만납니다. 하늘에 기도하면 그토록 내리던 비가 멈추는 덕에 '100% 맑음 소녀'로 불리던 소녀였죠. 호다카와 히나, 히나의 동생 나기까지 셋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만, 맑음 뒤 흐림이 찾아오듯 그들 앞엔 엄청난 비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너의 이름은.>으로 신화를 써내려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 여운에 새로운 잠재력이 있다고 믿은 모양입니다. 이상하리만치 비가 그치지 않는 도쿄를 무대로, 하늘이 선택하고 운명이 연결한 남녀라는 기본 얼개를 <날씨의 아이>에 그대로 다시 가져왔죠. 초자연적인 현상과 능력을 일상에 자연스레 녹여내려 하고, 그 중심엔 다시 한 번 사랑이 있습니다.



 판타지 세계관은 대부분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 하는' 작가의 설정들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허구의 것이라 한들 기초적인 논리나 한계는 분명히 해야 하죠. 예를 들어 지구 곁을 지나가는 혜성 때문에 시공간이 뒤틀려 두 사람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은 다소 엉뚱하지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의 간단한 규칙을 토대로 하고 있고,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기에 애초에 따질 거리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날씨의 아이>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어느 날의 간절한 기도 덕에 하늘의 선택을 받아 맑은 날을 불러올 수 있는 능력까지는 딱히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수백 년의 역사나 구름 위의 세상 등 살이 붙으면서 스스로 파낸 구멍의 크기가 지나치게 커집니다. 영화도 이를 아는 듯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신비롭고 환상적이지만 무엇인지 모를 존재와 화면을 더욱 거세게 몰아칩니다. 



 달리 말해 두 주인공의 사랑이라는 분명한 목적만 이루어진다면 말 그대로 나머지 모든 것은 어떻게 나와 어떻게 사라져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나중에 어떻게든 다시 활용하거나 부연하리라 생각했던 대부분의 소재와 장면들은 언제 나왔냐는 듯 깡그리 무시되죠. 전작에서처럼 다소 급한 전개는 결말부에 다가갈수록 빨라지길 넘어 편집이 잘못되기라도 한 듯 널을 뜁니다.


 차라리 연인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어도 좋은 사춘기 소년의 내면 세계를 비유적으로, 환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면 몇 배는 폭발력이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거듭된 무리수에 주인공 호다카의 사고와 행동은 평범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가뜩이나 부족한 설득력을 한 층 더 끌어내립니다. 소년과 소녀를 넘어 '세계의 비밀'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 끌어들이며 바깥 세상으로 확대한 접근이 완전한 독이 되었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어떤 영화들보다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들을 위한 작품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빛의 마술사'라는 별명에 부끄럽지 않으려는 듯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상황과 장면을 수시로 집어넣고,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얼굴들과 목소리들을 등장시키며 소소한 즐거움까지 채우죠. 하지만 시청각적 즐거움만 바라보기엔 <날씨의 아이>가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던 것은 너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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