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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Oct 18. 2019

<82년생 김지영> 리뷰

어제로 가다듬는 오늘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배우와 단편 제작 활동을 병행하던 김도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82년생 김지영>입니다. 원작 소설과 영화 모두 안팎으로 꽤나 뜨거운 주목을 받은 작품이죠. 카누의 공유와 모카골드 라이트의 정유미가 주연을 맡았고(?), 김미경, 공민정, 박성연, 이봉련, 김성철, 예수정 등이 조연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2년 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오늘을 살아가는 지영. 남편 대현과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든든한 가족들이 지영에겐 큰 힘이 됩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지영은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대현은 아내가 상처입을까 두려워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괜찮다고만 하는 나날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화와 원작은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이 평범함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의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누구나 겪어 왔던 사건들을 다루려 하죠. 때문에 일반적인 영화들의 기승전결식 구조보다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나열하는 구성을 취합니다. 지영과 대현의 이야기 외에도 가족, 친구, 동료의 이야기나 과거 회상 등 에피소드의 출처도 다양하죠.



 섬세하고 담백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최대한의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담담한 톤을 유지합니다. 높아지는 언성이나 때맞춰 들어오는 음악으로 감정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가끔은 부둥켜안은 오열보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 한 방울이 더 거대한 파도를 이끌어낸다는 사실을 다행히 간과하지 않은, 보기 드문 영화이기도 합니다.


 소재를 떠나 일정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되새기려는 영화들이 절대적으로 피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 혹은 소수의 캐릭터를 '악당'으로 상정하는 것이죠. 단순한 극적 재미를 위해서라면 무관하겠지만, 스크린을 넘어 사회적인 영향력을 가지려는 영화들에겐 치명적입니다. 비판하려는 지점이 사회나 시스템을 향하는 대신 순전히 개인적인 악함이나 일탈과 뒤섞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작년 이맘때쯤 개봉되었던 <국가부도의 날> 리뷰에서도 같은 내용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 입에서 나오는 것은 죄다 악랄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상황이 아니라 인물의 문제로 바뀌며 메시지가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드라마 <SKY 캐슬>의 방향성이 입시 제도와 과도한 교육열의 비판에서 김주영이라는 절대악의 처단으로 쏠린 것도 같은 사례가 되겠구요. 달리 말해, 비판하려는 대상이 '난 안 저러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실패한 이야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은 꽤 오랫동안 안정적인 노선을 유지합니다. 사례와 상황이 바뀔 때마다 해당하는 인물도 바뀌며 문제를 한 곳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지영을 괴롭게 하는 사람도, 지영에게 힘이 되는 사람도 여럿으로 나누어 공감의 여지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전자는 과거를 반성하게 하고, 후자는 다가올 상황을 준비하게 하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 균형이 순간적으로 무너지는 장면도 더러 있습니다. 모두를 대변하는 캐릭터로 지영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놓았음에도, 굳이 지영을 벗어나거나 지영과 무관한 곳에서 새로운 논제를 끌어들이는 욕심을 부립니다. 영화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의를 고려했을 때, 앞서 언급한 회피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주는 모든 사족은 큰 독이 됩니다.


 초기 시놉시스 공개 당시 조금은 의아했던 빙의 설정도 그닥 매끄러운 각색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초자연적인 수준이라 각본에 전제되는 평범함이나 일상 등에 역행할뿐더러, 급작스레 감정을 고조시키는 등 연출상의 쉬운 요령이 되어 버리죠. 이처럼 스스로의 일관성을 주기적으로 거스르며 현실과의 경계를 나서서 상기하는 자충수가 이따금씩 튀어나옵니다.



 가슴 속에 고통스레 담아 두었던 말들을 한 마디씩 모두 쏟아내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듣는 사람의 얼굴을 부끄러움으로 붉히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완전한 성공이고, 그를 토대로 그랬던 과거와는 다른 현재와 미래를 향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절반의 성공입니다. 동시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었기에, 게다가 그럴 잠재력까지 증명해 보였기에 새삼 아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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