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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02. 2019

<결혼 이야기> 리뷰

나아가지 않아도 흘러가는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


 2017년 <마이어로위츠 스토리> 이후 2년만에 다시 넷플릭스 작품으로 돌아온 노아 바움백 감독의 신작, <결혼 이야기>입니다. <아이리시맨>, <두 교황>과 함께 넷플릭스의 심상치 않은 연말 행보에 힘을 실어줄 영화이기도 하죠.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을 공동 주연으로 로라 던, 레이 리오타, 앨런 알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12월 6일 넷플릭스 공개에 앞서 11월 말부터 극장 상영에 돌입했구요.



 극단 감독과 배우로 처음 만나 예쁜 아들까지 얻으며 결혼 생활을 이어 온 찰리와 니콜. 하지만 크고 작은 차이들이 하나둘 모여 어느새 파경에 이르죠. 서로를 향한 존중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변호사 없이 원만하게 처리하려 하지만, 양육권이라는 민감한 사안과 순간의 선택과 실수들이 모여 일은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어갑니다. 


 <프란시스 하>, <위 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등, 노아 바움백은 일상의 자그마한 이야기를 각본에 옮겨담길 즐기는 감독입니다. 상상만으로는 채워넣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문학적으로 조응하는 덕에, 공백기 동안 다음 작품에 실을 작은 것들을 주워담고 있지 않을까 싶은 감독이죠. '일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편적인 것에서 자신만의 시선을 취해 다시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데 탁월합니다.



 이번 <결혼 이야기>는 그 정점에 오른 작품입니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찰리와 니콜이 서로가 서로에게서 발견한 장점들을 각자의 목소리로 나열하며 둘의 관계와 영화의 출발점을 아주 효율적으로 정리합니다. 둘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삶을 살고 있는 누구이며, 그랬던 관계가 지금은 어떤 곳에 다다른 상황인지를 딱 두 개의 시퀀스로 마무리하죠.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2시간이 넘도록 펼쳐지는 광경은 행복했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이제는 진흙탕 싸움밖에 남지 않은 이혼의 과정이죠. 변호사 없이 우리끼리 잘 해보자던 약속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어느새 서로의 면전에서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다며 고함을 지르는 사이가 되고 맙니다.



 영화는 결코 이 다툼의 잘잘못을 따져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극단 감독과 배우라는 두 주인공의 관계에서부터 명백히 드러나 있죠. 주목받던 신인 감독이 비교적 능력이 부족해 보이던 배우를 섭외했지만, 이후 배우는 날개를 달고 다른 제의를 거절해야 할 정도로 성공 가도에 오릅니다. 감독 역시 신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명성을 얻어 이름을 날리게 되죠.


 여기서 이루어진 성공이 누구의 덕이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력 중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둘 다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죠. 세상에는 완전한 선을 그을 수 없는 곳이 너무나도 많지만, 그럼에도 그 경계에 서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균형'이 됩니다.



 어쩌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자연히 찰리와 니콜 중 누가 더욱 결정적인 잘못을 했는지 따져보고 싶겠지만, 영화는 이처럼 끊임없이 그 균형을 맞추며 자잘한 사건보다는 관계 그 자체로 시선을 돌립니다. 두 사람의 결합으로 마침표를 찍고 책을 덮는 줄만 알았던 '결혼'이라는 개념에 자기만의 해석을 펼쳐놓죠. 찰리와 니콜은 물론 변호사 제이와 노라, 버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입을 빌려 다양한 조언과 철학을 아끼지 않습니다.


 극중 찰리는 아동용 카시트를 채우다가 손에 상처를 입습니다. 렌트카 업체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부족함 탓이었죠. 이후 한 번은 헨리와 쳤던 장난을 재현하다가 더 큰 상처를 냅니다. 이번엔 담당자 앞에서 부린 과한 객기 탓이었구요. 모자라거나 과한 것 모두 균형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모두 숨기고 싶은, 숨겨야만 하는 결과를 초래하죠.



 그러면서도 작은 것들도 놓치지 않습니다. 한 번의 감상으로는 놓쳤을 아주 사소한 순간, 표정, 단어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또 다른 시점에서 감상한다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일 영화입니다. 둘 중에 그래도 누군가의 편을 들고 싶었던 사람에게도 언젠가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할 순간이 올 지 모릅니다. 부모부터 변호사들까지 알고 보면 정상이 없는 난장판에, 그래도 서로의 비정상을 채워 줄 조각은 처음부터 서로뿐이었죠.


 <스타 워즈>부터 <패터슨>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스케일을 가리지 않으며 엄청난 완성도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는 <결혼 이야기>로 또 한 번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증명합니다. 편집과 각본을 제외하면 영화는 이렇다할 연출적 기교도 부리지 않지만, 두 배우의 파도와 같은 감정선을 하나의 테이크에 담아내는 시도만으로 충분하죠.



 은유와 상징이 가득함에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상업성과 작품성 중 어느 한 쪽으로도 부족하거나 과하게 쏠리지 않습니다. 균형을 중시하며 스스로의 균형에도 엄정합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두 사람의 이야기임에도 모두의 이야기가 됩니다. 현실은 의외로 명확한 과정이 기대한 결과를 내놓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누구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저 일어나는 대로 흘러가는 것 또한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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