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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28. 2019

<나를 찾아줘> 리뷰

불쾌하게 질척이는


<나를 찾아줘>

★★


 2005년 <친절한 금자씨> 이후 무려 1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이영애의 <나를 찾아줘>입니다. 간만의 복귀에 무대인사부터 예능까지 오랜만의 나들이가 많아진 모습입니다. 제목 때문에 데이빗 핀처 영화의 리메이크작을 기대한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죠.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배급작이자 김승우 감독의 데뷔작이고, 이영애와 함께 유재명, 박해준, 이원근, 허동원, 김종수 등이 이름을 올린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오늘도 하염없이 6년 전 실종된 아들 윤수를 찾고 있는 정연과 명국 부부. 그러던 어느 날, 숱하게 반복되던 거짓 제보와 달리 생김새부터 흉터까지 똑같은 아이를 봤다는 제보에 정연은 지체없이 홀로 낯선 곳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등장을 경계하며 비슷한 아이를 본 적도 없다는 경찰과 마을 사람들. 그들이 뭔가 숨기고 있음을 직감한 정연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찾기 시작합니다.


 <성난황소>, <비긴 어게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로마의 휴일> 등 영화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 노래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게으른 작명의 새로운 예시입니다. 굳이 이를 정당화하고 싶었는지 극중 나를 찾아달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여전히 설득도 되지 않을뿐더러 문어체 대사 특유의 떨어지는 몰입도도 막지 못했습니다. 



 치외법권이라도 적용되는 듯 외지인을 경계하다못해 삼켜 버리는 섬과 같은 곳. 미스터리 스릴러를 전개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무대입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이끼>, <도가니> 등이 좋은 예가 되겠죠. 의도하지 않게 이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곳으로 빨려들어가고, 그런 주인공을 빨아먹으려는 사람들의 작태는 영화의 재료가 됩니다.


 이런 영화들은 그 순간의 자극에 매몰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주인공이 고통받으며 빠져나가지 못하는 광경은 분명 탐나는 연출 대상이죠. 누구 혹은 무엇을 최대한 절묘하게 맞물리는 솜씨를 뽐내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그 이후에 복선 내지는 전개의 단계로 활용되었을 때에나 존재 가치가 있을 뿐, 단순히 감정을 격앙시키는 수단에 그친다면 남는 것은 불쾌함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를 찾아줘>는 최악의 예시입니다. 운이나 우연이라고 포장할 수조차 없는 장면들과 책임질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는 1차원적인 자극으로 일관합니다. 섬 마을 사람들이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첫 등장에서부터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지만, 계속해서 역겨움에 눈살을 찌푸려야만 하는 묘사를 덧붙이며 관객들의 감정을 불필요하게 소모하죠. 


 하필 자리를 비워서 전화를 받지 못하고, 하필 정의로운 경찰이 출근하지 않는 날이고, 하필 문자 메시지만 보고 길을 떠나고, 하필 외딴 곳으로 사냥을 떠나는 날인 식입니다.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도 한두 번입니다. 설득력을 갖출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아이를 잃어버린 사람의 이성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너그러움을 강요합니다. 



 이런 허용은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사용하며 영화의 긴장을 유지해야 하지만, <나를 찾아줘>는 모든 연결고리의 기본값으로 써먹는 터라 이 모든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동이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습니다. 정연이라는 캐릭터가 홀로 러닝타임을 지탱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죠. 수미상관식 오프닝부터 폭력으로 얼룩진 사족까지, 불필요함의 비율이 한계를 일찍이 돌파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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