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Mar 17. 2021

<퍼펙트 케어> 리뷰

계획은 다 있었던 기생충


<퍼펙트 케어>

(I Care A Lot)

★★


 <데드풀> 이후 눈만 마주치면 장난을 칠 것만 같은 라이언 레이놀즈가 있다면, <나를 찾아줘> 이후 눈만 마주치면 식칼을 꺼내들 것만 같은 로자먼드 파이크의 신작 <퍼펙트 케어>입니다. 아직 방송국 조명도 식지 않아 따끈따끈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가져다준 작품이 되었네요. <제 5침공>의 조나단 블레이크슨 감독이 간만에 내놓은 장편 영화이기도 합니다.



 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자그마한 기업의 CEO 말라. 겉으로 보면 노인들의 안전한 말년을 책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타겟을 물색해 요양원에 가둔 뒤 집기와 가구는 물론 집까지 경매로 넘겨 버리는 악질이죠. 그렇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망을 달성하려는 그녀의 눈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새 목표물이 나타나고, 그 작은 욕심은 그녀의 모든 것을 뒤집어 놓게 됩니다.


 시작은 대강 평범한 범죄 오락물 느낍이 납니다. 주인공이라고 꼭 선할 필요는 없고, 그를 겨냥해 대리 만족을 자신의 미덕으로 삼는 영화들도 많죠. 당장 국내 영화들만 해도 조직 폭력배들이나 동네 건달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느와르물이 꽤나 잘 나가는 편입니다. 다만 완전히 오락적으로 접근하지 않거나 자칫 주인공의 선택을 장려하는 뉘앙스라도 풍긴다면 큰 잘못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퍼펙트 케어>는 시작부터 이 선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습니다. 로자먼드 파이크의 말라는 어느 모로 보나 인간 말종입니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라면 다른 누구는 어떻게 되건 요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잣대 따위는 나약한 놈들이나 내세우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와중에 머리도 좋아 법의 울타리마저 이용하는 철두철미함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고 묘사하는 시선이 순전히 오락적이거나 유쾌하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진지합니다. 마치 이런 것도 삶의 한 방식이라는 듯, 말라의 독백까지 첨가하며 성공한 자산가의 위인전을 다루듯 접근합니다. 나는 온갖 짐승들이 날뛰는 밀림에서 나만의 철학과 신념으로 살아남은 최상위 포식자라는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세상 모든 존재는 그런 나를 시기해 끌어내리려는 방해꾼에 불과합니다.



 보통 동종의 영화들은 주인공과 맞서거나 대립하는 인물들까지 비슷한 부류의 인물로 설정해 이런 도덕적 혼란을 최소화합니다. 예를 들어 조폭 영화에서 성공한 주인공이 끌어내린 상대는 또 다른 조폭입니다. 어차피 나쁜 놈이 나쁜 놈 무너뜨렸으니 정의의 일종인 것 같기도 하니, 관객들의 정서적 개입도 훨씬 부드럽게 이루어집니다. 다름아닌 <나를 찾아줘>에서의 로자먼드 파이크가 누렸던 위치이기도 하죠.


 하지만 <퍼퍽트 케어>는 다릅니다. 말라는 아무 것도 모르고 도움받을 곳도 없는 노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사회적 기생충에 불과합니다. 그런 그녀를 저지하려는 인물들은 그 노인들의 친족을 비롯한 순전한 피해자들이구요. 그럼에도 말라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영화는 이들을 우리 대단한 주인공의 야망을 방해하는 무지렁이들로 묘사하며 끊임없이 말라의 카리스마에 동화되길 권유합니다.



 이 무용한 반복에 지칠 때쯤 영화는 피터 딘클리지의 로만을 내세웁니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았다며, 말라를 상대적인 피해자로 만들어 줄 나쁜 놈 하나를 등장시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따져 보면 자신의 패악은 생각지도 않은 채 감히 나의 원대한 계획을 망치려 한다며 분노하는 말라의 자가당착을 강화할 뿐이죠. 사람 잘못 건드렸다며 복수심에 불타는 말라를 보고 있으면 이런 주객전도가 따로 없습니다.


 물론 이런 캐릭터를 창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담아내고 바라보는 방식이 틀어져도 아주 크게 틀어졌습니다. 영화는 모든 구성 요소를 낭비해 가며 이런 캐릭터의 행보에 동조합니다. 클라이막스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신중하던 로만이 오로지 말라의 활약을 위해 허술하디 허술하게 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영화에겐 가능한 변명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말라라는 캐릭터에게, 그리고 그를 연기하는 로자먼드 파이크에게 모든 것을 의존합니다. 나머지 모든 캐릭터와 배우, 그리고 그들이 엮이며 만들어내는 대사와 상황은 오로지 그를 빛나게 하려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어디 성공한 뒷세계 조직의 보스가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낸 선전물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이 불쾌함이 의도였다고 하기엔 스스로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세련됨이 전무합니다. 스스로가 유능하다는 증거로 타인의 무능함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그리고 그 애처로움을 부정하는 것은 또 얼마나 비참한 광경인지 증명합니다. 영화는 신나서 여기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발 위에서 캐릭터와 메시지 둘 다 잡아냈어야 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미나리>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