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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01. 2021

<미나리> 리뷰

갈라진만큼 건실한 뿌리


<미나리>

(Minari)

★★★☆


 <기생충>의 국위선양 이후 모무들 해외 굵직한 영화제 소식들에 이전보다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죠.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그 레이더에 아주 훌륭하게 걸려든 영화입니다. 벌써부터 모은 트로피만 한 트럭인 이 영화가 드디어 오는 3월 초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네요.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까지의 출연진부터 범람하는 한국어 대사들까지, 여러모로 국내 관객들은 각별히 바라볼 수밖에 없겠죠.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고, 엄마 모니카도 병아리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습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가 함께 살기로 하고, 그렇게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 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하죠. 하지만 아이들의 눈에 낯선 할머니는 아직 그저 불청객처럼 보이기만 합니다.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고,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합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에 안고 새로이 미국에 정착한 한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 터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기는 했으나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더 많은 공감을 살 영화죠. 그 땐 그랬다고 하니 일단 공감하며 끄덕이는 것이 피부로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을 앞설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 효과를 더하기 위해 영화는 자신의 시선이 특정한 곳으로 기우는 것을 막으려 만방으로 노력합니다. 한인들은 억울한 핍박과 차별의 대상이었다거나, 낯선 곳의 정착민이 응당 겪어야 할 수준 이상의 고통을 겪었다는 과장은 굳이 덧붙이지 않죠. 외려 나서서 걱정하는 주인공들을 따뜻한 이웃의 품으로 맞이하는 캐릭터들을 통해 관객들을 간접적으로 안심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똑바른 시선은 특수성과 보편성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모니카와 제이콥이라는 주인공 캐릭터들의 개성에 집중하는 동시에 그 시절을 겪어 낸 모든 한인들을 떠올리게끔 합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정말 주인공들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가족들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파를 지나 왔으리라 예상할 수 있죠. 특별함과 특별하지 않음이 공존하는 비결입니다.



 제이콥은 알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수컷 병아리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새출발을 찾아 머나먼 땅에 도착했으니, 이전까지의 삶은 그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보여주고 증명해야 합니다. 그것도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닙니다. 증명될 때까지 시도하는 것 말고는 돌아볼 여유도, 용기도 그에겐 남아있지 않습니다.


 반면 모니카는 그런 제이콥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멋모르고 도착한 새로운 땅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낯설었습니다. 뿌리를 내려 보려고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하면 돌아갈 곳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리는 것도 응당 시도해야 할 과정입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멀어질 일밖에 남지 않은 둘의 앞에 순자가 나타납니다.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이 어디서든 잘 자라 누구에게든 갈 수 있는 미나리처럼 뿌리내리길 기원하는 인물입니다. 순자는 떨어져나가던 가족을 자신만의 규칙과 방식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어붙입니다. 따져 보면 크고 작은 다툼의, 나아가 거대한 혼돈의 근원인 한편 모두의 본능적 연대를 깨우는 주체가 되죠.


 영화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장치에서 각자 분명한 역할을 지닌 부품과도 같은 캐릭터들에 지대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비슷한 접근을 택한 영화들은 전도된 주객을 감추지 못해 캐릭터들을 일차원적인 도구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미나리>는 캐릭터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과 주장을 드러내고 또 서로에게 관철하는 모습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죠.



 제목이자 극중 소재인 미나리만으로도 그 이상의 상징과 메시지를 잔뜩 머금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영화입니다. 그를 굳이 하나씩 파내지 않아도 흥미로운 가족극임은 분명하지만, 별다른 의지가 없는 관객들에게 삽을 들게 할 힘까지는 또 갖추지 못한 영화이기도 하죠. 맛을 느끼기에 앞서 향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조차 스스로의 이름을 따라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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