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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01. 2021

<톰과 제리> 리뷰

추억의 강육약식


<톰과 제리>

(Tom and Jerry)

★★★


 아직도 할리우드가 눈독들이고 있는 고전들은 끝이 없습니다. 결국엔 희대의 라이벌 톰과 제리도 번호표를 뽑아 들었네요. 2000년대 초반의 <판타스틱 4> 시리즈를 맡았던 팀 스토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클로이 모레츠와 마이클 페나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행히도 요즘의 디즈니가 그러하듯 진짜 고양이와 쥐를 등장시키거나 얼핏 징그러운 3D로 재현하려고 하지는 않았네요.



 살 곳을 찾아 정처없이 떠돌다가 뉴욕의 한 고급 호텔을 노리기로 한 생쥐 제리, 그리고 그런 제리의 뒤를 쫓는 고양이 톰. 이 호텔로 말하자면 마침 사교계 최고의 인사인 한 커플의 성대한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고, 아직은 특별한 직업 없이 성공을 꿈꾸는 카일라가 새출발을 계획하는 곳이기도 하죠. 각자 다른 목적으로 모인 사고뭉치들의 위험 가득한 만남은 그렇게 성사됩니다.


 톰과 제리라니, 추억의 이름이고 얼굴들입니다. 재치와 유머로 살아남는 영리한 꾀돌이 컨셉으로 참 오래 버텼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대는 약자(?)의 편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에 고길동이 있다면 <톰과 제리>엔 톰이 있습니다. 이제 제리에게 마냥 박수를 쳐 주는 때는 지났습니다. 별 잘못도 없는 것 같은데 매번 당하기만 하는 우리 톰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이번 <톰과 제리>의 시선은 고전 시리즈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전히 그냥 자기 할 일 잘 하면서 살고 있는 톰 앞에 제리가 나타나 선빵(!)을 날리고, 그걸 받아치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전쟁이 발발하는 식입니다. 호텔을 무단 점거하더니 VIP의 보물을 훔치고는 이걸 돌려줄 테니 자기 방을 보존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도 아주 뻔뻔스레 잘만 던집니다.


 짤막한 클립이나 짤방으로 볼 때야 기발하거나 깜찍하다며 받아들일 수 있지만,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그걸로 채우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인간 주인공들을 끼워넣었습니다. 호텔 직원들과 그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커플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호텔 쪽이야 톰과 제리의 전장이다 보니 그럭저럭 들어맞지만, 커플의 진정한 사랑 타령은 꽤나 뜬금없습니다.



 예견된 한계입니다. 톰과 제리는 하나의 영화를 지탱할 만한 소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예전 애니메이션 극장판처럼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어 대사를 하게 만드는 건 둘의 캐릭터성을 근간부터 뒤흔드는 또 다른 모험입니다. 인간 캐릭터들의 개입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멀쩡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궤도를 벗어나면 이래서 안 된다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수죠.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전체 관람가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뭐가 어떻게 전개되든 좋은 것이 좋은 것이고 착한 것이 착한 것이니 예쁘게 봐 달라고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으니 아이들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추억 속 주인공들이 행복해할 수 있다면 된 것이 아니냐며 악수를 청하죠. 당연히 처음부터 원하던 답변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어깨를 으쓱하면서라도 받아줄 만 합니다.



 톰과 제리를 추억으로 간직해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은 이제 톰의 생고생에 마냥 웃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팬층을 대규모로 끌어올릴 만큼 흡입력이 강력하지도 않구요. 그럼에도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작게나마 꿈틀대는 동심과 클로이 모레츠의 상큼한 매력 덕에 다들 이번 한 편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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