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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24. 2021

<카오스 워킹> 리뷰

생각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카오스 워킹>

(Chaos Walking)

★★


 톰 홀랜드, 데이지 리들리, 매즈 미켈슨이 뭉쳤습니다. <점퍼>부터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SF 사랑을 보여 오고 있는 더그 라이만 감독의 신작, <카오스 워킹>이죠. <몬스터 콜>의 작가이기도 한 패트릭 네스의 3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이번 영화는 해당 시리즈의 1편인 <절대 놓을 수 없는 칼(The Knife of Never Letting Go)>을 옮긴 작품입니다.



 모든 생각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노이즈'가 창궐한 2200년대의 새 행성, 뉴 월드. 우리의 주인공 토드는 마을의 실세인 시장님 말씀을 열심히 들어 언젠가는 마을 경비대에 들어가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우주선이 추락하고, 의문의 침입자와 함께 지금껏 알아 오고 믿어 왔던 모든 것이 뒤바뀌기 시작하죠. 친구, 가족, 그리고 그토록 존경하던 시장님마저도 이제 믿을 수 없습니다.


 얼핏 흥미로운 설정이 많습니다. 모 영화에서 말했듯,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곧바로 머릿속에 코끼리가 뛰어다니는 것이 인지상정이죠. 이만큼 끈질기고도 의도에서 벗어난 생명력을 지닌 존재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과 귀에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충분한 수련을 마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의도에 따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것까지 가능합니다.



 실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설정입니다. 못 쓰면 동네 바보가 되지만 잘만 쓰면 마블 유니버스의 로키가 부럽지 않습니다. 어찌됐든 이것 하나만으로도 만들어낼 그림이 정말 많습니다. 지나가는 코미디부터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액션까지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누군가에겐 숨지도 못하고 숨길 수도 없는 약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강점이자 권력이라는 것에도 녹여낼 메시지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카오스 워킹>은 슬프게도 동종의 실패한, 그리고 어설픈 SF 영화들의 전철을 따라갑니다. 서로와 전혀 무관한 설정들을 겹쳐 쌓아올리고는 그렇게 늘어난 덩치를 자신의 자신감이라 착각합니다. 외부의 힘을 적절히 나누어 받을 구조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옆구리만 툭 쳐도 와르르 무너질 허우대로 세계관 아닌 세계관의 바람만 부풀리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뉴 월드의 원주민이었다는 스패클이 대표적입니다. 끝까지 미지의 존재 취급을 받으면 모를까, 이들은 주기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중반부쯤에는 직접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노이즈의 근원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 분명하고, 이대로라면 인간과의 종족 전쟁도 벌어질 긴장도 갖추고 있죠. 그럼에도 영화는 일정 순간부터 아예 이들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행동합니다.


 대부분의 설정이, 심지어는 노이즈에도 이런 대접이 반복됩니다. 바이러스라더니 감염이나 치료 따위엔 관심조차 없습니다. 순간순간 필요할 때는 끌어다 써 놓고 뒤돌아서면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행동합니다. 신나게 찍다가 돈이 똑 떨어져 나머지 각본을 폐기해 버린 것처럼,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려다가 회사가 팔려서 급하게 접어야 했던 <엑스맨: 다크 피닉스>처럼 장면과 장면이 외따로 놉니다.



 이처럼 뚝뚝 끊기는 장면들 탓에 조연들이 주된 희생양이 됩니다. 닉 조나스의 데이비 프렌티스와 신시아 에리보의 힐디 블랙이 대표적이죠. 어디 나중에 활약 한 번은 해 줄 것처럼 소개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주인공 일행에게만 집중한 카메라 화면에 밀려 증발합니다. 갑자기 증발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대로 데이빗 오예로워의 아론 목사처럼 갑자기 튀어나오기만 하는 캐릭터도 있어 혼돈은 더욱 심화되구요.


 주연들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닙니다. 주역인 톰 홀랜드만 해도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피터 파커와 곧 나올 도굴 어드벤처(?) <언차티드>의 네이선 드레이크를 뒤섞은 기시감이 가득하고, 데이지 리들리와 매즈 미켈슨 역시 <스타 워즈>나 <닥터 스트레인지> 등 굵직한 오락 영화에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연기로 일관하죠.


 기승전결부터 캐릭터까지 어느 하나 뚜렷한 것이 없습니다. 뚫어 놓은 길은 많은데 가야 할 방향을 모릅니다. 그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목적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와중에 컴퓨터 그래픽 수준은 나쁘지 않고, 가까이 가기만 해도 서로의 생각이 들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초 고퀄리티의 비디오게임을 보는 듯해 의외로 눈요기는 조금 되는 편입니다.



 사실 <카오스 워킹>은 지난 2017년 촬영을 마친 뒤 진행했던 시사 반응이 바닥을 찍어 지금껏 묵혀 둔 영화였습니다. 편집으로 하다 하다 안 되어 재촬영을 기획했지만, 그마저도 주인공들의 거미줄과 광선검 일정에 밀려 2019년에야 진행할 수 있었구요. 거기서 2년을 추가로 기다려 개봉을 맞이한 것이 이번 작품인데, 수 년간 내심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 실패를 시국에 마지못해 꺼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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