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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9. 2021

<팔콘 앤 윈터 솔져> 리뷰

비브라늄으로 빚은 소외의 우화


<팔콘 앤 윈터 솔져>

(The Falcon and the Winter Soldier)

★★★☆


 <완다비전>의 다음 주자로 출범한 디즈니 플러스의 새 TV 시리즈, <팔콘과 윈터 솔져>입니다. 제목 그대로 캡틴 아메리카의 벗이었던 두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고, 그 외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지모와 샤론 카터, <블랙 팬서> 와칸다의 왕실 부대 도라 밀라제 등이 등장하는 탓에 세계관 전반 예습이 조금은 필요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스티브가 물려준 방패를 도무지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정부에 기증한 샘. 그러나 정부는 누구의 동의도 없이 2대 캡틴 아메리카를 임명하며 선전 활동을 펼칩니다. 이에 이전부터 윈터 솔져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버키마저 세상 밖으로 나오고, 타노스 사태로 절반이 사라졌던 시절로의 회귀를 꿈꾸는 테러리스트 집단과 새로운 슈퍼 솔져 혈청마저 등장하며 또 다시 많은 것이 시작되려 합니다.


 <완다비전>이 하나의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며 캐릭터들의 능력에 비해 비교적 아담한 규모로 진행되었다면, <팔콘 앤 윈터 솔져>는 정부와 국가를 쉴새없이 건너며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당시의 슈퍼히어로물과 첩보물을 결합한 향기를 되찾았습니다. 집단과 집단, 개인과 개인이 각자의 목적과 이해 관계를 토대로 쉴새없이 충돌하며 복잡다단하지만 흥미로운 인물 및 사건 관계도를 형성하죠.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그랬듯, 기본적으로는 슈퍼히어로물과 첩보물의 결합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초능력으로 우주나 행성 단위의 무언가를 좌지우지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첩보물에서는 불가능한 전개를 위해 SF 느낌 나는 소재들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슈퍼 솔져 혈청이라는 것이 있으면 너도나도 그걸 맞고 싸우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세력 간의 다툼을 다루는 식이죠.


 덕분에 캐릭터 개개인의 내면에 집중하기도 용이합니다. 시리즈의 제목이기도 한 팔콘과 윈터 솔져는 항상 캡틴 아메리카라는 더 큰 존재의 부수적인 인물로 존재해 왔습니다. 분량이나 비중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캡틴 아메리카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스티브 로저스의 내면과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수많은 수단과 장치들 중 하나로 이용되기도 했구요.



 그렇게 이번 스포트라이트는 '소외된 사람들'을 향합니다. 극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무언가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들입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에게 가려졌던 어벤져스의 동료들도, 이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이유로 모든 것의 관심 밖에 났던 사람들도 뿌리는 같습니다. 영웅들마저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은행 대출을 전전하고, 정부의 압력으로 존재가 지워져 숨어 살아야만 하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과 현실을 바꾸려 분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도 누군가는 서로를 문제의 원인이라 지목하며 싸우려 덤빕니다. 분노를 분노로 해결하려 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집니다. 시작점은 어느새 잊힌 채 정말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싸우는 사람들의 바쁜 눈엔 이를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이는 인종이나 난민 등 최근의 문화계가 주목하고 또 적극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이슈들의 대분류나 마찬가지입니다. <팔콘 앤 윈터 솔져>는 마블만이 보여주고 또 들려줄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만의 버전으로 이를 다루려고 하구요. 시리즈의 규모와 특성을 적극 활용한, 영화가 아닌 드라마만이 가능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히 기본적으로는 익숙한 얼굴들의 안전한 매력과 평균 이상의 액션 등 오락성도 한껏 갖추고 있습니다. 가벼운 티격댐부터 무거운 트라우마까지 인물상은 입체적이고, 비브라늄 방패나 팔로 무장한 맨몸 액션은 스티브의 은퇴로 다시 볼 수 없으리라 여겼던 눈요기가 됩니다. 현실 조작급 초능력이 없음에도 <완다비전>과 똑같이 회당 2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죠.


 문맥의 얼개는 매끈하지만 이를 캐릭터와 사건들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주인공 쪽은 수십 개의 영화들로 온갖 세세한 지점들까지 모두가 열성적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초면인 사람들은 0에서부터 근간을 쌓아올려야 하죠. 특히나 자신만의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무지막지한 행동력으로 밀어붙이는 악당이라면 벽돌 한 조각 한 조각이 모두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팔콘 앤 윈터 솔져>의 메인 악역 자리를 가져간 칼리 모겐타우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보통 악역은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언제 어디서 보아도 순수한 악이 있고, 상황이나 시대가 그렇게 만든 상대적인 악이 있죠. <팔콘 앤 윈터 솔져>가 보여주는 칼리는 전자로 묘사했어야 함에도 계속해서 후자의 자리를 부여받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나쁜데도 변명할 기회를 계속해서 억지로 만들어 주는 인물이죠.


 무고한 죽음조차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아무렇지 않게 치부하며, 어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자잘한 테러만 일삼으며 자신의 물리적인 힘과 권력에 취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이 모든 행동은 절반일 때가 좋았다는 추상적인 생각 하나만으로 자행된 결과물이죠. 슈퍼 솔져 혈청은 맞은 사람의 속성을 강화한다는 설정이 따라붙긴 하지만, 이마저도 각본 편한 대로 뒤죽박죽이라 딱히 설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후반부에 접어들어서는 드라마 스스로도 이 인물의 한계를 깨닫고 존 워커나 샤론 카터 등 다른 인물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맙니다. 하지만 힘을 합친 주인공 무리와 플래그 스매셔의 대립으로 향했어야 할 드라마의 큰 줄기를 억지로 틀어 버리는 모양새라 전혀 매끄럽지 못하죠. 칼리 모겐타우와 플래그 스매셔 한정으로는 <완다비전> 이상의 용두사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막판에 결국 참지 못하고 몰아넣은 연설도 썩 훌륭한 연출은 되지 못합니다. 특히나 이전 장면에서 방패와 슈퍼 솔져 혈청 등을 이용해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직후라 더더욱 대비되죠. 나름대로는 지나치게 정치적이고 교조적이라고 생각되기 직전에 멈춘 듯 하지만, 여섯 개의 에피소드에서 이어져 온 연출과는 분명히 이질적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에서는 영화판 세계관의 성공적인 확장을 이루어냈습니다. 팔콘과 윈터 솔져는 물론 지모, 존 워커, 샤론 카터 등 기존 인물들과 새 인물들, 익숙한 면과 익숙하지 않은 면을 적절하고 자연스레 뒤섞어 이 사람들이 새로이 만들어낼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죠. 마지막화 공개와 맞춰 발표한 <캡틴 아메리카 4>가 이 의도를 완벽하게 증명하구요.


 한편으로는 한정된 인물과 공간 탓에 시리즈를 통째로 보지 않아도 이어지는 <닥터 스트레인지 2>를 보기에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완다비전>과 달리, 너무나 많은 인물들에게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일어난 탓에 <캡틴 아메리카 4>를 위해서는 <팔콘 앤 윈터 솔져>의 예습이 필수가 될 듯합니다. 영웅의 정체성이나 마찬가지인 장비는 물론 서로와의 관계, 심지어는 선악이 뒤집힌 경우도 있는 탓이죠.



 필요했던 인물들에게 알맞는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주인공급'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붙일 수 있었어도 정말 주인공인 적은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 완전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크리스 에반스가 카메오 출연조차 하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지만, 그만큼 마블 유니버스가 온전한 다음 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기대가 솟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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