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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7. 2021

<비와 당신의 이야기> 리뷰

변덕맞은 감성비


<비와 당신의 이야기>

★★★


 <수상한 고객들>, <메이킹 패밀리>의 조진모 감독 신작인 <비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소니픽쳐스에서 배급을 맡아 한국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시작 시 횃불을 든 여인(?)을 구경할 수 있죠. 강하늘과 천우희를 주연으로 강소라, 강영석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아무래도 부활의 동명 곡 덕분에 익숙한 제목이겠지만, 의외로 연관성은 딱히 없습니다.



 뚜렷한 꿈도 목표도 없이 지루한 삼수 생활을 이어가던 영호는 오랫동안 간직해 온 기억 속 친구를 떠올리고 무작정 편지를 보냅니다. 한편 엄마와 함께 오래된 책방을 운영하는 소희는 언니 소연에게 도착한 영호의 편지를 받아들죠. 아픈 언니를 대신해 답장을 보낸 소희 덕에 두 사람의 편지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편지는 두 사람의 일상을 설렘과 기다림으로 물들이게 됩니다.


 몽글몽글한 청춘의 몽글몽글한 사랑입니다. 생각만 해도 묘한 설렘이 피어납니다.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기억이 추억 보정까지 받아 이제는 꺼내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더 이상 머릿속에만 두고 있을 수가 없어졌습니다. 용기만 한 번 내 보면 이 막연한 행복을 현실로 꺼내놓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누구나 이런 기억 하나씩은 갖고 있으리라 여긴 결과물입니다.



 첫사랑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첫사랑의 정확히 어떤 한 부분을 다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보다 보면 이게 만인의 첫사랑 이야기가 맞나 싶기도 합니다. 첫사랑의 기억과 흔적을 쫓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일정한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주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번갈아 다루는 데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전개는 꽤 부산한 편입니다. 강하늘과 천우희가 주연이라면 강소라와 강영석이 분명한 조연만큼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고, 주인공들과 이들의 이야기는 첫사랑보다는 인연이라는 키워드로 수식하는 것이 맞아 보이죠. 이 네 명에게 주목하는 것에 더해 영화의 시점마저도 현재와 과거를 포함해 서너 개, 일정 부분에서는 그 이상을 끊임없이 오가기에 기본적인 줄거리 파악도 마냥 쉽지는 않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들려주고 싶었던 것도 많은 탓입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청춘을 표현할 때 빠지기 영 심심한 단어임에 틀림없고, 마침 설정해 둔 캐릭터가 캐릭터다 보니 가운데에 두기에 딱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비와 당신의 이야기>가 겨냥한 이야기는 말 그대로 '너와 나 모두의'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첫사랑은 그 대분류에 속하는 이야기들 중 가장 덩치가 큰 단어에 불과하죠.


 그 이하는 다양합니다. 만남과 헤어짐, 꿈과 희망 등 누구나 소소하게 갖고 있는 자그마한 것들이죠. 객관적인 성공담으로 자랑스레 꺼내놓을 수는 없어도 소중하게 하나씩 갖고 있을 법한 덩어리들입니다. 모두가 떵떵대며 성공하기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영화는 그런 세상과 관객 사이에 서서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합니다.



 아마 강소라의 수진은 영화의 방향성을 그대로 의인화한 캐릭터일 겁니다. 일정 시점부터는 인생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 영호에게만 보이게 강림한 환영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로(...) 인생 3회차쯤 되어 보이는 상황과 문구들을 즐기죠. 텍스트로 어딘가에 적혀 있을 땐 각자가 능동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말들이 소리를 빌려 나오니 왕왕 어색하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첫사랑에서 출발해 청춘으로 갔다가 다시 자신의 출발점을 자각해 그리로 돌아갑니다. 이리저리 난사한 뒤 한두 군데 얻어 걸리면 그것이 자신의 의도였다고 포장하는 격입니다. 단적인 예로 수진의 오로라와 영호의 12월 31일은 아예 다른 영화를 섞어둔 듯 서로 완전히 다른 줄기의 핵심이지만, 영화는 어느 한 쪽도 끝까지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사랑 영화와 청춘 영화 사이에서 끝끝내 표류하지만, 그럼에도 따뜻하고 귀여운 구석이 많은 영화입니다.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지만 그 순간 하나하나마저 소중하다는 감성으로 가득하죠. 꼭 누군가를 짓밟거나 어딘가에 올라서야만 성공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자신의 방향과 빛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해줄 사람도 필요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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