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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25. 2021

<부기> 리뷰

몇 번 튀다 둥글둥글


<부기>

(Boogie)

★★★


 에디 황의 장편 데뷔작이자 테일러 타카하시, 테일러 페이지, 2020년 2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바샤르 잭슨(팝 스모크)이 한데 모인 <부기>입니다. 눈길을 사로잡는 새빨간 포스터에 농구공을 들고 있는 동양인이라니, 최소한으로 최대한을 표현하는 포스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국내엔 롯데시네마 단독으로 지난 4월 21일 개봉되었습니다.



 언젠가 NBA에서 활약할 날을 꿈꾸는 농구 유망주 알프레드 친. 친구들은 '부기'라 부르는 그는 대학 진학과 장학금 문제로 부모님과 대립하기 시작하고, 농구만 바라보고 살아 온 터라 다른 길은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장애물이나 마찬가지인 라이벌 몽크의 존재감은 벌써부터 그를 괴롭히고, 새로 생긴 여자친구와의 갈등까지 더해지며 앞길은 캄캄하기만 합니다.


 일(?)과 사랑 모두를 잡고 싶은 10대 학원물에 스포츠물을 끼얹고 아시아계 이민자 소재까지 합쳤습니다. 소위 한 따까리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 온 소년이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나고,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를 넘어서며 한층 성장하는 과정을 다루죠. 보편적이고 흔하지만 기본은 하는 재료들이 안전하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모든 길이 안전합니다. 농구에 소질이 있다는 설정으로 학원물과 스포츠물이라는 두 갈래 길을 한 번에 해결합니다. 말이 되면서도 손쉬운 해결책으로 타고난 예체능계 재능만큼이나 적당한 것은 없습니다. 프로의 세계라면 피를 깎는 노력도 더해져야 하겠지만, 학교 대항전 정도쯤 되는 10대들의 경기라면 원래 갖고 있던 실력이나 순간의 운 정도로 해결해도 별 문제는 없습니다.


 <페어웰>이나 <미나리> 등으로 단기간에 익숙해져 있을 아시아계 이민자 소재는 언급한 두 갈래 길과는 축이 다릅니다. 그 둘이 2D의 축이라면 이 쪽 덕에 3D가 됩니다. 극중 사주 팔자를 보거나 가장 어린 사람이 차를 따라주는 등으로 문화 내지는 민족을 표현하고, 구세대에겐 명예였던 것이 신세대에겐 족쇄가 됨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대를 넘어서도 건재한 핏줄의 존재감을 강조합니다.



 이 과정이 딱히 매끄럽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힘들 땐 평소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들까지 내 등에 업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릴 땐 그것마저 유들유들하게 넘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법이죠. 한층 묵직하게 다뤄지던 문화의 차이 문제는 고민 덩어리들이 해결됨과 동시에 그냥 그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좋게 좋게 넘어가고 맙니다.


 따져 보면 <부기>는 정확히 어떤 영화라고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청춘물이나 스포츠물 둘 중 하나라고 하기엔 나머지 한 쪽의 그림자가 지나치게 짙습니다. 농구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면서도 막상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여주거나 하지는 않죠. 이민자들의 고뇌는 말 그대로 향 첨가에 지나지 않는 터라 동종 영화들과 엮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겠구요.



 모든 면에서 무난하다는 수식이 무난하겠습니다. 현실적인 듯 하지만 대부분의 굵직한 갈등 해결 과정만 보아도 그렇지 못합니다. 농구가 아니어도 무관하고, 아시아계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습니다(주인공의 실력 연출을 보면 10대는 10대여야 합니다). 등장이나 말투부터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여줄 것만 같던 부기의 카리스마를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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