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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19. 2021

<서복> 리뷰

뒤처진 미래


<서복>

★★☆


 2012년 <건축학개론> 이후 무려 9년만에 돌아온 이용주 감독의 신작, <서복>입니다. CJ 엔터테인먼트에서 160억 원을 넘게 투입한 SF 대작으로, 평소였다면 무기가 되었을 커다란 덩치 탓에 개봉 일정 잡는 데에만 한참을 기다려야 했죠. 결국은 여느 영화들과 달리 넷플릭스행도 아닌 극장 개봉과 티빙 동시 공개라는 강수 내지는 최후의 수를 두어야만 했습니다.



 과거 트라우마로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전직 요원 기헌은 정보국으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받습니다. 줄기세포 복제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실험체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일이었죠.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서복과 마지막 임무를 서둘러 마무리짓고 싶은 기헌, 그리고 서복을 차지하려 나선 여러 집단의 추적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부분 비슷한 논제를 던집니다. 인조인간도 사람으로 볼 수 있냐는 것이죠. 사람으로 볼 수 있다면 그 이유를, 볼 수 없다면 또 그 이유를 궁금해하게 만듭니다. 기술력마저 상상할 수 없었던 예전에야 인조인간을 시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과제였지만, 이제는 그냥 배우를 데려다가 인조인간이라고 우기면(...) 되는 시대가 도래해 역으로 또 편해지긴 했죠.



 그렇다면 새로운 과제는 메시지의 전달 방식입니다. 인조인간 그 자체를 들이대는 방법이 있다면, 그가 행동하고 또 생각하는 모습을 나열하며 제 3자로 하여금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하는 접근법이 좀 더 최근의 것이죠. 심지어는 인조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반전으로 공개해 그 메시지의 폭발력을 더욱 강화하는 일종의 충격 요법도 이제는 흔하게 쓰이곤 합니다.


 <서복>의 가장 큰 실수는 영화의 안팎으로 후자의 조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전자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인조인간 서복과 인간 기헌은 메시지를 말 그대로 입 밖에 꺼내놓는 메신저에 불과합니다. 산다는 건 어떤 건가요, 죽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슬프네요, 아름답네요 등의 소위 '철학적' 딱지를 붙일 만한 무작위 단어들을 주기적으로 꺼내놓는 상자에 지나지 않죠.



 깊은 생각이야 당연히 유발될 수 있지만, 이는 코끼리 생각을 해 보라고 하면 코끼리의 모습이 떠오르는 1차원적인 유도일 뿐입니다. 불씨와 장작을 모두 준비해 은근하고 또 커다란 불꽃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이런 영화의 역할이라면, <서복>은 관객들의 머릿속에 모든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 기대한 채 불씨만을 끊임없이 뿌리는 데 만족하고 있죠.


 당연히 캐릭터들에겐 어떤 매력도 발견할 수 없고, 하나하나의 잠재력이 없으니 둘 이상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시너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승전결의 구성과 개연성은 검은 기업의 검은 음모가 연루된 인조인간 소재 각본을 써 내라고 하면 최악부터 최고의 정확한 평균쯤 되는, 다시 말해 뒤돌면 잊어버릴 정도로 색도 없고 향기도 없죠.


 뻔뻔하게도 극중 과학자들마저 영문을 모르는 초능력까지 집어넣어 설득력의 구멍을 메우려 하지만, 이는 인간보다도 인간적인 사고방식이라는 대전제 자체를 위반하며 스스로의 완성도를 또 다시 깎아내립니다. 편한 것만 찾고 있어 보이는 것만 찾으며 껍데기를 한껏 꾸미는 사이 신나서 가져올 때는 몰랐던 책임들이 영화를 안에서부터 무너뜨리죠.



 <서복>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평소 하지 못했던 철학적 의문들에 몸을 담을 수 있음은 단지 관객 본인이 평소 품었던 생각의 깊이가 그만큼 깊었다는 뜻입니다. <서복> 그 자체는 물론 그 안의 누구도 기존에 있지 않았거나 틀을 깨는 무언가를 선사하지 못합니다. 볼거리는 장식이고 중요한 건 메시지라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식은 정말 장식이고 메시지는 볼품없으니 건질 것이 없습니다.


 잣대가 이처럼 엄격할 수밖에 없는 것은 SF 장르와 인조인간 소재의 작품들 중 상위 호환은 물론 세기의 명작으로 불릴 만한 작품이 지나치게 많은 탓입니다. 리스트는 누구를 언급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죠. <서복>이 스스로의 가장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해 전면에 내건 요소들은 이미 소화될 대로 소화되어 다른 장르와의 훌륭한 시너지용 밑반찬이 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본디 SF라는 것이 미래지향을 기본으로 하는데, 시대착오적인 SF는 당연히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는 안 되는 단어의 조합입니다. 그럼에도 <서복>은 이 돈과 이 배우, 이 때깔을 갖추고도 마치 여기에 만족하는 듯한 모습으로 일관합니다. 어깨를 펴려면 끝까지 펴고 고개를 숙이려면 끝까지 숙여야 하는데, 특히 대작들은 그 때 그 때 입맛에 맞춰 고르는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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