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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20. 2021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리뷰

두려움을 잊은 문과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F9)

★★★


 왜인지 입국할 때마다 강해 보이는 영단어 하나씩 달고 들어오는 <분노의 질주>가 이번엔 '얼티메이트'를 달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번엔 '인피니트'나 '포에버', '파이널' 쯤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제작비로는 2억 달러를 넘게 들였고, 시국에 밀려 만으로 1년을 기다려 마침내 극장에 상륙했습니다. 액션 블록버스터에 목말랐던 관객들은 일일 관객수 40만 명이라는 간만의 대기록으로 이에 응답했구요.



 아기 브라이언을 돌보며 이제 아드레날린 가득한 삶은 지난날로 돌리려던 돔. 그러던 어느 날 그들과 함께했던 미스터 노바디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들에게만 도착한 구조 신호에는 전 세계의 모든 기계를 통제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의 존재가 확인됩니다. 이에 도미닉과 친구들은 또 한 번 시동을 걸며 예상치 못했던 과거의 인연들을 마주하게 되죠.


 영화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이름과 얼굴 보는 재미도 어마어마해졌습니다. 빈 디젤, 미셸 로드리게즈, 조다나 브루스터, 타이리스 깁슨, 루다크리스, 나탈리 엠마누엘 등의 주인공 멤버들에 샤를리즈 테론, 커트 러셀, 루카스 블랙, 헬렌 미렌, 성 강까지 복귀했죠. 대신 드웨인 존슨과 제이슨 스타뎀, 루크 에반스가 주력급에서 빠지고 존 시나와 마이클 루커가 새로 합류했습니다.



 여전히 상상력과 비례하는 스케일만큼은 어마어마합니다. 무엇을 구상하든 자동차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으면 일단 만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제트기 밑바닥에 거대 자석을 달아서 활강하는 자동차를 낚아채는 장면은 저스틴 린 감독의 11살 아들이 낸 아이디어라는데, 이처럼 제아무리 허무맹랑한 생각이라도 보기에 멋있을 것만 같으면 만들어내고야 마는 자신감이 가득하죠.


 소위 말하는 '뭐 같지만 멋있다'는 문장에 충실하지만, 조금 냉정히 보면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시리즈 역사상 가장 아슬아슬합니다. 지금까지의 영화들이 '멋있다' 쪽에 기울어 있었다면 이번 <더 얼티메이트>는 '뭐 같다' 쪽에 살짝 더 가깝죠. 빠르게 달려 지뢰를 피하고 무적이라 떠들면서 날아드는 총알에 생채기 하나 안 나는 건 그렇다 치지만, 오냐오냐 하니까 막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마 이 사태의 가장 큰 원흉(?)은 야심차게 도입한 전자석에 심취한 탓이 가장 클 겁니다. 다이얼로 조종하는 자석을 어디서 주워 오더니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거의 모든 액션을 자석에 의지하죠. 아무리 이런 영화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게 아둔한 짓이라고 하더라도 눈감아줄 수 있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잠깐 써먹고 말았어야 하는 소재를 자주 그리고 오래 우려냅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아이디어에 차를 더하는 게 아니라 차가 아니면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공중 낙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니 차를 탄 채로 해내는 7편의 도전이 전자의 예가 되겠죠. 그런데 이번 9편은 다른 방법 따위는 생각지도 않은 채 일단 차를 타는 것을 전제한 채 상황과 전개를 만들어내니 허무맹랑의 정도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시각적으로 멋있는 장면들을 구상하고 만든 뒤 아주 얄팍한 줄거리로 이 사이사이를 간신히 동여맵니다. 의외로 액션 시리즈치고는 캐릭터들의 존재감도 확실하고 관계의 변화 양상도 흥미로운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는 시리즈의 전통을 지키는 듯 지키지 않는 듯 꽤 애매한 길을 걸어가죠. 도미닉의 가족사나 시리즈 팬들의 콧잔등을 간지럽히는 폴 워커의 그림자는 이를 막아내는 순간의 치트키 역할을 하구요.


 때문에 주연급들을 일부 쳐냈음에도 인물 정리가 영 되지 않습니다. 커트 러셀이나 샤를리즈 테론은 얼굴이나 나온 게 용한 수준이고, 아무리 촬영장에서 빈 디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지만 언급조차 되지 않는 드웨인 존슨은 서글플 따름이죠. 왜인지 평소보다 많은 분량을 확보한 타이리스 깁슨과 루다크리스 콤비의 개그마저도 액션과 마찬가지로 허용 가능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듭니다.



 이런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줄거리에 기대할 구석이 많을 리 없습니다. 켜기만 하면 세상 모든 전자기기를 제멋대로 다룰 수 있다는 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토레토 집안의 과거사 역시 이번 한 편과 몇몇 장면의 연출만을 위해 급조한 티가 물씬 풍겨 딱히 몰입이 되지는 않죠. 각본상의 장점들은 대부분 전편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서 발생하고, 이번 9편이 새로이 만들어내는 것은 전무합니다.


 애초에 동네에서 벌어지는 도둑과 경찰 이야기에서 출발한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시리즈 중반부를 거치며 <분노의 질주>는 9편씩이나 이어질 이유와 색깔을 스스로 확립했습니다. 그 정점은 제임스 완과 함께했던 <분노의 질주: 더 세븐>이었구요. 그러나 이번 <더 얼티메이트>는 지난 8편에 이어 어째 애써서 따 놓은 수식어들을 스스로 저버리거나 퇴보하는 듯한 수를 반복해서 둡니다.



 원래 그랬던 시리즈라며 위안 삼기엔 전편들이 보여준 상한선이 분명히 더 높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정점이었다고 해서 나머지가 모두 용납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거대자본 블록버스터의 수요는 항상 존재해 왔고, <분노의 질주>만큼 거기에 알맞는 시리즈도 찾기 어렵죠. 물론 요 다음 편에서는 추가적인 영점 조정도 해 주었으면 좋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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