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Jun 16. 2021

<인 더 하이츠> 리뷰

피부로만 전하는 위로


<인 더 하이츠>

(In the Heights)

★★★


 <스텝 업> 시리즈로 커리어를 쌓고 <나우 유 씨 미 2>, <지.아이.조 2> 등으로 오락영화에도 도전했던 존 추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으로 드디어 쌓아 왔던 설움(?)을 털었습니다. 그 때 그 기분을 잊지 못한 그는 비슷한 노선의 차기작들을 줄줄이 발표했고, 뮤지컬계의 전설을 쓰고 있는 린 마누엘 미란다와 손을 잡은 이번 <인 더 하이츠>도 그 명단 중 하나였죠.



 도미니카로 돌아가 아버지의 상점을 다시 열고픈 성실 열혈 청년 우스나비, 동네 미용실에서 일하며 밤마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우는 바네사, 스탠포드에 진학했음에도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운 니나까지. 각자 저마다의 생각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워싱턴 하이츠의 사람들은 오늘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은 자신만의 길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스포트라이트와 마이크를 내어 주겠다는 감독과 뮤지컬 제작자, 할리우드에서 한창 주가를 띄우고 있는 신예들의 수요와 공급이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제작자 겸 배우인 린 마누엘 미란다와 주연 안소니 라모스는 본토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와 동시에 엄청난 인기로 많은 기록을 갱신했던 <해밀턴>의 인연을 이어가는 중이기도 하죠.



 여기에 음악과 춤을 사랑하기로는 빠지지 않는 존 추를 얹었습니다. 존 추의 작품들은 볼거리 혹은 즐길거리가 각본의 짜임새와 조금이라도 충돌하는 지점에서는 거의 무조건 전자를 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의 영화들에서는 설득력이 완전히 무너지는 단점이 되는 이 특징이 뮤지컬과 만나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환상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쯤이라고 하면 맞겠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이번 <인 더 하이츠>의 메시지는 아주 명확합니다. 가슴 속 깊은 곳 꿈을 품고 미국이라는 낯선 기회의 땅에 도착한 사람들을 향하죠. 당장은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어 평범한 일상에 도달하는 것도 너무나 힘들겠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유대하며 이 곳을 향했던 처음의 이유를 되새기라고 이야기합니다. 꿈이라는 것은 거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만으로 소중한 것이라 이야기하죠.



 그것이 영화의 기승전결을 통째로 관통합니다. 모든 장면과 전개는 그를 위해 존재합니다. 영화의 감상을 좌우할 지점이 단 한 곳이라는 이야기인데, 장장 2시간 20분짜리 영화가 택하기에는 꽤 위험한 도박이었죠. 등장인물들의 처지를 정말 피부로 느끼고 구구절절 공감하며 들을 때마다 위로받는 사람이 아닌 이상, 조금이라도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게 되는 것이 보통인 탓입니다.


 우스나비와 바네사, 니나, 베니, 소니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특정한 상황 혹은 위치에 있는 이민자들의 속마음을 대변합니다. 겉으로는 얼핏 다 비슷한 처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입장에서는 이 모든 사람들에게 한 번씩은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고 싶겠지요. 덕분에 각자 최소한 자신이 가운데에 서는 곡 하나씩은 보장을 받으며 러닝타임을 폭발적으로 늘립니다.



 이를 달리 보면 장면과 장면의 연결성 문제가 됩니다. 실컷 이 사람의 이런 이야기를 하던 영화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저 사람의 저런 이야기를 꺼냅니다. 감정선은 들쑥날쑥하고 집중하기엔 산만합니다. '우스나비와 바네사를 중심에 둔 워싱턴 하이츠 거주자들의 이야기'라고 묶는 것도 반쯤은 억지에 가까운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베니와 니나의 이야기는 겉돌다못해 통편집을 부르는 수준이죠.


 이는 또다시 평범함을 꿈꾸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의의로 귀결됩니다. <인 더 하이츠>는 그런 사람들에게 똑같은 내일이 결코 똑같지 않으리라고 말하는 영화입니다. 비록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도 당신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바로 그것이 당신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주리라는 염원이자 찬미죠. 비슷한 노선의 영화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내세우는 것과는 살짝 다른 방향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메시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 늘어놓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워싱턴 하이츠의 주민들 중 1억 원짜리 복권 당첨자가 나오는데, 아직 이 동네에서 당첨 복권이 판매되었다는 이야기까지만 나온 터라 누군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영화는 모두가 1억으로 무얼 할지 행복한 상상에 젖는 순간에만 집중할 뿐, 그 복권이 정말 나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딱히 관심이 없죠.


 관객을 포함한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당첨자가 밝혀질 때까지 이 관심이 쭉 이어져야 맞겠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상상 한 번씩 하더니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복권 따위는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논리와 영화의 방향성이 충돌하면 영화는 전자를 무시합니다.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야 하는 영화에 복권 당첨금이 팔자를 바꾸는 전개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로 삼고 또 만족시키려는 사람들이 워낙 특수한 영화라 그 외의 관객층에게는 어필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집니다. 선택과 집중이 지나치다못해 뮤지컬, 음악 영화의 강점 중 하나인 대중성까지도 일부 건드리는 지경이죠. 물론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가상의 인물들과 각본으로 공감과 설득을 이끌어내는 것이 영화의 순기능이겠지만, <인 더 하이츠>의 도박엔 걸린 게 많은 편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킬러의 보디가드 2>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