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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18. 2021

<루카> 리뷰

인어 피스


<루카>

(Luca)

★★★


 올 1월 <소울>로 관객수 200만 명을 돌파했던 픽사의 이른 신작, <루카>입니다. 달 위에서 펼쳐지는 픽사 단편 <라 루나>의 감독인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그 때의 기억을 살렸는지 몇몇 캐릭터들의 외모는 거의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사샤 바론 코헨, 마야 루돌프 등이 목소리 출연진으로 이름을 올렸네요.



 바닷속 인어로 태어나 따분한 나날을 보내던 소년 루카. 물 밖에는 절대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마침 우연히 만난 자칭 인간세상 전문가 알베르토 덕에 겁도 없이 바깥 세상으로 향하고, 거기서 만난 새 친구 줄리아와 함께 모두의 염원이 담긴 철인 3종 대회(?) 출전을 준비합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꼬맹이가 있고 절대 가지 말라고 하는 장소가 있습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거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절대 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직도 자기 자신을 아기 취급하는 것도 슬슬 질리고, 막상 슬쩍 보면 별로 위험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점점 키워 마침내 그 곳으로 향하죠. 역시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안도는 착각이었을 뿐, 이제 남은 것은 사건의 연속입니다.



 어디서 많이 본 줄거리에 껍데기만 갈아끼운 또 다른 영화입니다. 보통은 정말로 생명의 위협이 걸린 사건들이 펼쳐지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지 말라던 쪽과 해 버린 쪽 모두 각자의 교훈을 얻어갑니다. 상황 설정상 보호자와 피보호자인 경우가 많아 우리 누구누구가 이만큼 성장했다는 자랑스러움과 스스로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는 뿌듯함이 공존하는 결말이죠.


 <루카>는 그 공식을 아주 안전하고 착하게 따라갑니다. 안전하게 따라가는 것은 전체관람가 애니메이션 특성상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냥 착하기만 한 것은 그와는 살짝 별개의 문제죠. 비록 어인처럼 중심이 되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어도, 그렇게 만들어낸 세상 속 캐릭터들이 겪는 문제는 현실의 무언가를 대변하거나 상징하기에 모든 일이 마냥 잘 풀린다는 전개는 권장할 만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면에서 <루카>는 조금이라도 위험한 길을 나아가길 거부합니다. 평화롭게 내리쬐는 이탈리아의 햇살을 맞으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쉬고만 싶은 마음이 각본 전체에 반영되어 있죠. 물론 나름대로 주인공들의 반목과 메인 악당의 존재까지도 준비가 되어 있지만, 영화의 전체 줄거리를 관통한다고 하기엔 갈등도 화해도 영 난데없습니다.


 이는 영화의 줄기가 되는 두 이야기가 서로와 섞일 듯 섞이지 않는 탓입니다. 루카와 알베르토의 육지 이야기가 하나, 줄리아와 함께하는 대회 이야기가 다른 하나죠. 둘 사이를 괴짜라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언더독(자막에는 '아싸'라고 표기됩니다)'이라는 단어로 연결하고 싶었던 듯한데, 애초에 이들을 나서서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가장 괴상한지라(...) 딱히 잘못된 세상과 맞선다는 식의 풀이가 어렵습니다.


 무언가 깊게 팔 듯 하다가도 막상 들어가지 않습니다. 내려가서 무언가 빛나는 것을 발굴할 잠재력이 있는 소재들임에도 이들을 한 곳에 예쁘게 모아놓는 것에 만족하는 듯하죠. 픽사의 전작들에 비해 상상력으로 채워넣을 자리가 부족하니 말 그대로 주인공의 상상을 시각화하길 반복하는데, <라 루나>의 그림자도 짙게 느껴지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안락함에 치중했음이 꽤 직접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로 웃음과 찡한 코 끝도 잡아내는 걸 보면 역시 기본은 놓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대를 감싸안는 메시지까지는 욕심내지 않은 채 전래동화 비슷한 기승전결에 만족하죠. 감상의 척도로는 2015년 <굿 다이노>를 잡으면 적당할 겁니다. 그나저나 픽사 하면 본편 전에 나오는 단편도 항상 감초 역할을 해 주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빠져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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