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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21. 2021

<발신제한> 리뷰

사제처럼 얼기설기


<발신제한>

★★☆


 유수의 한국 영화들에서는 항상 이름을 빼놓지 않던 김창주 편집감독의 장편 데뷔작, <발신제한>입니다. 조우진의 첫 단독 주연작에 이재인, 진경, 김지호, 지창욱 등이 함께했네요. 2015년 제작된 스페인 영화 <레트리뷰션: 응징의 날(El desconocido)>을 원작으로 두고 있으며, 공식 제목은 <응징>, <블랙콜>을 거쳐 <발신제한>으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출발한 평범한 출근길, 은행센터장 성규에게 한 통의 발신번호 표시제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기 너머 의문의 목소리는 지금부터 자리에서 일어나면 차에 미리 설치해 둔 폭탄이 터질 것이라 경고하죠. 장난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성규는 곧 회사 동료의 차가 폭파되는 것을 눈 앞에서 목격하고, 졸지에 부산 도심 테러의 용의자가 되어 경찰의 추격까지 받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차에 설치된 폭탄 탓에 주인공은 고난을 맞이합니다. 처음엔 당연히 믿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보니 장난은 아닌 것 같습니다. 목적도 이유도 모르지만 일단 돈을 원하는 것 같고, 의외로 돈만 주면 모든 것을 끝내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사건의 경과는 양쪽 모두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흥미로운 전개입니다. <폰 부스>부터 <더 테러 라이브>까지, 스릴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죠. 긴장 그 자체로 이루어진 상황인 터라 장르의 색을 드러내기는 아주 용이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죠. 도대체 이 난데없는 상황이 도대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향하는지 말이 되게 설명해야 합니다. 쉬운 구석이 쉬운만큼 어려운 구석은 또 어렵습니다.


 마동석을 주연으로 내세운 팔씨름 영화 <챔피언> 리뷰에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유망주를 발굴해 대강 이런저런 갈등으로 성장기를 만들어내고, 경기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해 절대악으로 군림하는 악당을 물리치는 전개라면 그 어떤 스포츠로도 이런 영화들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었죠. 보통은 기승전결과 소재가 섞이는 듯 섞이지 않는 탓이 가장 큽니다.



 이번 <발신제한>도 큰 맥락에서 같은 문제점을 공유합니다. 원한 관계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튀어나올 수 있기에 이를 사제 폭탄 테러라는 소재와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합니다. 범인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기에 소수로도 이토록 주도면밀하게 활동할 수 있고, 하고 많은 접근법 중 하필 이토록 이목을 끄는 수단을 선택해 이렇게까지 판을 키우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영화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밝혀지는 전말과 영화의 기승전결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와 겉돕니다. 이런 식이라면 채무부터 치정까지 어떤 사유를 갖다붙여도 똑같은 각본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단서나 복선도 없이 갑자기 이러저러한 과거사가 있어서 이런 일을 벌였다고 주장하며 윤리 의식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누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추격 스릴러 쪽의 짜임새가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좌석에 무게가 실리면 활성화되는 폭탄과 마주한 상황, 범인은 주인공과의 통화만 가능합니다. 시각적인 정보라고는 GPS를 이용한 위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무게나 텍스트를 이용할 여지조차 주지 않은 채 아들이 다쳤으니 병원에 데려다 달라는 동어 반복으로 만족합니다.


 심지어 경찰력의 개입 이후로는 작정하고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통화 전파를 차단하고 폭발물 처리반까지 개입하는 와중에 현장에서는 기본적인 신원 조회조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냉혈한처럼 가차없던 범인은 각본이 필요로 하는 순간 그토록 어수룩할 수 없는 동네 청년으로 격하됩니다. 이처럼 한 번 빈틈을 보인 뒤로는 스스로 제아무리 긴장을 끌어올려도 기대가 따라붙지 않습니다.



 여느 스릴러들처럼 모두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무언가의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도 아니고, 얼핏 특수해 보이는 무언가를 통해 보편적인 교훈을 전달하려는 영화도 아닙니다. 한정된 공간에서의 한정된 인물이라면 전면에 강력하게 내세웠어야 하는 캐릭터 또한 힘이 영 부족합니다. 후반부 선회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그 직전까지의 모든 것을 덮으려는 시도는 다소 안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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