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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n 23. 2021

<미드나이트> 리뷰

빈 소리가 요란


<미드나이트>

★★☆


 권오승 감독의 장편 데뷔작에 진기주, 위하준, 박훈, 길해연, 김혜윤이 함께한 <미드나이트>입니다. 얼마 전 <서복>에 이어 티빙을 통해 극장 개봉과 동시에 스트리밍 공개를 결정한 또 다른 작품이네요. 진기주에겐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3년만에 맞이한 두 번째 출연작이고, 위하준에겐 <걸캅스> 이후 2년만의 복귀작이죠. 개봉 및 공개는 오는 30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귀가하던 길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한 청각장애인 경미. 무서움에 떨면서도 도움을 주려 하지만, 통상적인 대화도 불가한 탓에 상황 판단부터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오로지 재미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도식의 새로운 타겟이 되고, 쫓아오는 발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경미 앞에 또 다른 얼굴로 나타난 도식은 끊임없이 그녀의 근처를 배회합니다.


 김고은과 이민기의 <몬스터>, 심은경과 김성오의 <널 기다리며>,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김하늘과 유승호의 <블라인드> 등 생각나는 작품들이 벌써 몇 있습니다. 힘이나 주력 등 주인공과 악역의 기본적인 신체능력 차이만으로도 추격 스릴러 한 편은 뚝딱 만들어내곤 하는데, 여기에 청각장애라는 소재를 더해 상황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열어두었죠.



 <미드나이트>는 갖고 있는 모든 재료를 동원해 그 소재의 잠재력을 살리는 데 집중합니다. 소리를 들을 수 없으니 빠른 도움도 요청할 수 없고, 하다하다 살인마가 바로 뒤에 서 있어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죠. 게다가 이 살인마는 의상을 몇 벌씩 싸들고 다니며(!) 넉살과 임기응변으로 무장해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 특기입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 따로 없겠죠.


 이 때 중요한 것은 영화 스스로의 양심(?)입니다. 달리 말해 그럴듯한 장면을 만들어낼 재료들은 충분히 갖고 있으니, 머리를 잘 써서 말이 되는 상호작용을 이끌어내야 하죠. 한 번 가진 김에 확실히 해 보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장면 전체의 현실성이나 설득력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는 그 괜찮은 재료를 갖고 있었던 사실이 아까운 지경에 이른다는 겁니다.



 <미드나이트>도 그 경계선을 딱히 잘 지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멀쩡한 경찰력의 부재가 되겠죠. 범인이 범인이라고 해도 말투나 외모만 보고 믿지 않고, 2인 1조로 움직이는 것이 절대적인 원칙임에도 언제 어디서나 혼자 나타나 위기를 자처하는 식입니다. 상황의 긴장감을 더하고 러닝타임을 늘리려는 욕심에 '저게 말이 되냐'라는 말이 축적되면서 영화가 무너집니다.


 조연과 단역들의 활용도 제멋대로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캐릭터와 전개상 도망가면 쫓아가는 추격씬의 비중이 상당한데, 너무할 정도로 한 명도 없거나 너무할 정도로 잘 마주치는 양 극단을 넘나들죠. 염두에 둔 장면은 이미 구상이 끝난 상황에서, 여기까지 다다르는 과정과 이 장면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그만큼의 정성을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답답함을 보는 사람의 목구멍까지 밀어넣은 뒤 일부만 해소해 주는 방식의 반복이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만들어낸 긴장의 밀도는 여느 스릴러들의 평균을 상회합니다. 반쯤은 억지까지 부려 가며 짜낸 결과물까지 보잘것없다면 그야말로 최악이겠죠. 그러나 소재의 특수성까지 어느 정도 반영되어 <미드나이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림들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종종 영화를 보다 보면 영화가 배우에게 필요 이상으로 기댄다고 보일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배우에게서 같은 열연을 이끌어내더라도 이를 각본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영화가 있고, 배우 연기 하나만큼은 기억하게 하겠다는 듯 튀는 것을 방치하는 영화가 있죠. 전자는 영화의 완성도 전반에 기여하지만, 후자는 영화가 갖고 있는 수많은 구멍 중 아무 것이나 대신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영화 <사도>에서 사도세자가 행렬의 선두에 서서 물러나라며 포효하는 장면이 있고, <#살아있다>에서 준우가 집에 놔뒀던 술을 진탕 먹고는 음악에 취하는 장면이 있죠. 똑같이 유아인 배우의 연기력을 믿고 끌어낸 장면이지만, 전자가 전개와 캐릭터 모두에 기여하는 반면 후자는 양쪽 모두와 대응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자신의 빈 공간을 내주며 어떻게든 채우라고 요구하는 듯하죠.


 <미드나이트> 또한 이처럼 영화의 바깥쪽에서 안쪽을 채우려 시도합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소재와 진기주 배우의 연기력을 더해 아마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화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할 특정할 장면을 만들어내는데, 자칫 교조적이기까지 한 연출은 심지어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를 기용해 흥미와 의미 모두 잡은 동시 상영작 <콰이어트 플레이스 2>와 크게 대비됩니다.



 주연들을 제외하면 개성 면에서나 활약 면에서나 기억에 남을 인물들도 많지 않은데, 동종 영화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에 발목이라도 걸치고 싶어하는 얼굴들이 꽤 많은 영화치고는 타율이 그리 좋지 못한 편입니다. 불도 꺼지고 주변도 조용한 극장 상영관쯤 되면 피말리는 장면들의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겠지만, 안팎으로 그를 방해하는 손길을 모두 피하기도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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